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아들을 돌봐 주시던 분이 개인 사정으로 그만 두시는 바람에, 수업이 끝난 후 아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 당시 근무하던 학교는 돌봄교실을 시작한지 3년째였다. 돌봄교실을 보내면 나의 모든 고민이 쉽게 해결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들은 돌봄교실에 가서 숙제도 하고 간식도 먹을 수 있으며 때로는 수업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같은 학교에 있으니 아들이 아프거나 다칠 때 바로 달려갈 수 있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으리라.
그렇지만, 절대로 아들을 돌봄교실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늘 마음이 미어졌기 때문이다. 돌봄교실에서 아이들은 보드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수다를 떨며 숙제를 했다. 가끔은 종이접기 수업도 받고 강당에서 피구도 했다. 얼핏 보면 평화로워 보였지만 그 좁고 제한된 공간에서 정해진 것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숨이 막혔다. 수업이 끝나면 집에서 뒹글뒹글거리며 귤을 까먹으며 책을 읽거나 흙바닥에서 친구들과 사방치기, 고무줄 놀이를 하고 아파트 옆 수풀 더미를 정글탐험이라며 헤치고 다니던 내 어린 시절은 축복이었다. 어릴 때는 자유롭게 뛰노는 것이 당연한것인 줄 알았는데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이 슬펐다. 선생님들은 체념 어린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 요즘 애들은 놀 줄을 몰라. 그래서 학교에서 노는 법까지 가르쳐야 해. 우리는 어릴 때 동네에서 오빠나 언니, 친구들한테 저절로 놀이를 배웠잖아. 그런데 애네들은 그런 걸 해 본적이 없어서 몰라.”
아들은 돌봄교실 대신 태권도와 영어를 배우러 학원을 다니겠다고 했다. 그렇게 1학년 1학기를 보내고 우리는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9월에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어 아들은 다시 1학년 학생이 되었다. 나는 어학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느라 아침 8시 30분터 오후 4시 30분까지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 사이 아들을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미국의 돌봄교실인 ‘어드벤처 클럽’을 신청하기로 했다. 이곳은 한국처럼 학원이 많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아이를 데리러 오고 데려다 주는 시스템은 아예 존재하지 않아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행정실에서 노트북을 빌려주며 어드벤처 클럽을 신청하라고 했지만 화면 가득한 알 수 없는 영어 단어를 보니 눈물이 날 뻔했다. 어떡하지? 나 신청 못 하는 것 아냐? 읽고 또 읽어봐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낯선 문장들뿐이었다. 그때, 다행히 한 선생님이 다가와서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었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 선생님은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페이지를 하나씩 살펴보며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처음에는 그분이 행정 직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연히 행정실에 들른 보건 선생님이셨다. 자기 업무가 아닌데도 오랜 시간 정성껏 도와주신 것을 알고 나니 더 고마워졌다.
아들이 하루종일 알 수 없는 언어들에 둘러싸여 수업을 듣고, 편히 쉴 틈도 없이 어드벤처 클럽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 어드벤처 클럽으로 아들을 찾으러 간 첫 날, 입이 저절로 쩌억 벌어졌다. 좁은 교실이 아니라 커다란 강당이었다. 미술, 음악, 보드게임이 적힌 팻말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미술 코너에는 붓, 물감, 색종이, 도화지가 책상에 널려 있었고, 음악 코너에는 기타와 피아노 같은 각종 악기들이 놓여 있었다. 아이들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작은 텐트들이 있었고 그 안은 빈백과 포근한 담요, 인형들이 있어 아늑했다. 한국의 돌봄교실에서는 아이들이 하고 싶지 않은 수업도 해야 했지만, 여기서는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었다. 선생님들이 그리기, 만들기, 악기 배우기, 발야구, 축구, 농구 등을 각자 다른 코너에서 진행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자유롭게 선택해 참여할 수 있었다. 아니면 혼자서 그림도 그리고 악기도 연주하며 시간을 보내도 좋았다. 때로는 운동장으로 나가 아이들끼리 뛰어놀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복도, 강당, 운동장 등 모든 곳에 계셨고 아이들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도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날 아들은 ‘Spot It’이라는 보드 게임을 하며 선생님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아들은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은 아들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일대일로 놀이를 하고 있다고 설명해 주셨다. ‘Spot It’은 영어 단어를 빠르게 찾는 게임이라, 말하기 능력을 키우고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하셨다. 다정한 미소와 함께 전해진 그 말들은 참 따뜻했다. 이곳의 돌봄교실은 어른의 선택이나 필요가 아니라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곳이라면 아들의 어린 시절도 나의 어린 시절처럼 축복이 되지 않을까.
이 주일이 지난 어느 날, 아들은 집에 오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 엄마, 난 혼자야. 내 곁엔 아무도 없어.”
우진이는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서럽게 울었다. 마음이 아파서 아들을 꼭 안았다.
“ 왜 우진이 곁에 아무도 없어? 엄마가 있잖아.”
한참을 울고 나서야 아들은 입을 열었다.
“ 발야구를 하고 싶었어. 영어를 못 하니까 언제 하는지 물을 수가 없어서 계속 기다렸어. 그런데 애들이 발야구를 끝내고 강당에 들어 온 거야. 나도 발야구 진짜 하고 싶었는데……. 나만 쏙 빼 놓은거야. 아무도 같이 하자고 안 했어.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어.”
아들은 다시 설움이 폭발해 흐느꼈다. 위로의 말을 하고 싶었는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간신히 숨을 고르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 괜찮아.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아들은 조금씩 진정되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문득 어드벤처 클럽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메일을 쓰라는 안내문이 떠올랐다.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함을 열었다. 하지만 바로 부탁의 말을 전하는 것은 망설여졌다. 선생님들이 놀라시거나 공격적으로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아들이 발야구에 끼지 못해서 펑펑 울었어요. 발야구 할 때 챙겨 주세요.” 식의 부탁의 말. 그건 아니었다. 선생님이 아이를 잘 챙기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처럼 들릴까 봐 걱정이 됐다. 그런 식으로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리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써야 선생님께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면서도 부드럽게 부탁의 말을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먼저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그동안 선생님이 우진이를 위해 보여주신 세심한 배려와 노력들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진심과 사랑을 잘 알고 있다고도 적었다. 이제는 부탁의 말씀을 전할 차례였다. 우진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충분히 설명하고 구체적인 도움을 이끌어 내되, 그 상황이 절대 선생님 탓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진이가 자기는 혼자라고 울었던 일, 의사 소통 문제로 발야구하는 것을 몰랐던 점을 쓰고 마지막으로 발야구에 우진이를 데려가 주시기를 부탁드렸다. 어학원에서 배운 지식을 총동원해 알고 있는 모든 정중해 보이는 어휘들은 다 끌어다 쓰며 심혈을 기울여 작성했다. 내 생애에서 그렇게 글쓰기에 진심이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다음 날 어드벤처 클럽에서 온 짧은 답장을 받았다. “알겠습니다. 우진이를 도와주겠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어드벤처 클럽에 갔는데 아들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내게 달려와서 폭 안겼다.
“ 엄마, 나 발야구 했어요. 엄청 재미있었어요.”
선생님들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더니 환한 미소로 답하셨다. 그 후, 우진이는 어드벤처 클럽에서 친한 친구도 사귀고 형들과 함께 축구를 하며 제법 친구들과 잘 어울리기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어드벤처 클럽에서 우진이를 찾으러 간 날이었다. 우진이는 클레이든이라는 친구와 체스를 하고 있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친구 없다고 우진이가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떠올라 감개무량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게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둘이 다투기 시작했다. 클레이든이 체스 말을 두 손으로 붙잡고 옮기려 하자, 우진이가 그손을 꽉 쥐고 놓지 않았다. 두 아이는 몸까지 부들부들 떨면서 버티고 있었다. 말리고 싶은데 당황스러워서 영어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발만 동동 구르다가 급히 선생님께 달려가 손가락으로 두 아이를 가리켰다.
선생님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다가가셔서 아이들이 체스 말을 놓도록 하고 상황을 설명하라고 하셨다. 클레이든이 체스 말을 두었지만 마음이 변해서 옮기려고 했고 우진이는 안 된다고 한 거였다. 선생님은 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끝까지 들으시고는 간결하게 말씀하셨다.
“ 체스 규칙을 지켜야 해. 클레이든, 네가 잘못했어.”
클레이든은 강당 구석으로 가더니 서러워하며 꺼이꺼이 울었다. 선생님께서 달래 주시거나 “ 네가 잘못했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선생님은 묵묵히 지켜보고만 계셨다. 클레이든을 바라보던 우진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급기야는 울음을 터트렸다. 우진이는 클레이든을 뒤에서 끌어 안았다.
“ 클레이든, 울지마. 네가 우니까 내 마음이 너무 아파. 너는 내게 정말 소중한 친구야.”
클레이든은 몸을 돌려 우진이를 부등켜 안았다.
“ 우진, 감동이야. 나도 그래. 체스보다 네가 더 소중해. 잊고 있었어. 너는 내 가장 좋은 친구야.”
서로 꼭 끌어안고 울면서 체스보다 네가 더 소중하다며 열렬히 우정 고백을 하는 두 아이의 모습에서는 비장미까지 느껴졌다. 어처구니없으면서도 귀엽기도 해서 웃음이 자꾸 새어 나왔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억지로 입꼬리를 내리느라 힘들었다. 아이들은 놀고 싸우면서 스스로 깨닫고 성장한다. 어른들은 최소한의 꼭 필요한 개입만 하면 되는 거였다. 어드벤처 클럽에 넘치던 아이들 특유의 싱싱한 생명력의 비밀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안전하고 자유로운 환경을 주고 스스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개입만 하는 것.
그로부터 십 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돌봄교실은 표면적으로 화려하게 변했다. 종이접기, 피구처럼 단조로운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영어, 체스, 레고, 창의 미술, 공예, 코딩 등 아이와 학부모가 상의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생겼다. 체육 프로그램도 많아졌다. 라인댄스, 전래놀이, 방송댄스, 키성장운동, 요가, 배드민턴 등 아이들이 몸을 움직일 기회가 늘었다. 물론 학교가 클수록 프로그램의 종류가 풍성하고 작은 학교는 그만큼의 선택을 제공하지 못 한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선택의 폭이 커져 아이들은 다양한 체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겉보기에는 더 다채롭고 내실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여전히 빠져 있다. 바로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자유롭게 뛰놀 권리.
2024년부터 돌봄은 ‘늘봄’으로 변화를 시작했다. 돌봄이 1,2학년 학생을 무료로 5시까지 돌봐 준다면 늘봄은 모든 학년의 학생들을 저녁 8시까지 돌봐 준다. 정해진 프로그램을 아이들이 따라가야 하는 돌봄과는 달리 늘봄은 무료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수업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024년 나는 방과후 부장직을 맡게 되었고 돌봄, 방과후, 늘봄을 모두 총괄하는 책임자가 되었다. 그때 주변 선생님들은 많이 힘들거라고 안타까워하시며 “ 학원 원장님이 되었다고 생각해.”라고 말씀하셨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운영계획을 짜고 강사를 뽑고 강사들을 관리하고 수강료와 재료비를 정산하고 학부모 민원도 해결해야 했다. 그 사이, 담임을 맡고 있는 우리 반은 종종 뒷전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정부와 교육부에게 묻고 싶었다. 나는 교사인데 왜 한 달에 15만원(부장 수당)이란 돈을 받으면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며 강제로 투잡(two job) 뛰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건지. 입술이 항상 부르터있을 정도로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는데 왜 우리 반 아이들에게 미안해야만 하는지. 왜 내 체력과 영혼을 수업 연구 대신 수강료와 재료비 정산 같은 일에 갈아 넣어야 하는지. 어드벤처 클럽은 대학교 산하 단체가 운영했는데 우리나라는 왜 교사가 해야 하는 건지. 그래도 2025년부터는 운영의 책임자가 학교 선생님에서 교육청에서 뽑은 늘봄실무사로 바뀌어 지긋지긋한 방과후 부장에서 드디어 해방될 수 있었다. 이 일은 교사의 일이 아니라는 교사의 목소리가 정부의 귀에 들리는 데 19년이 걸렸다. 2006년부터 2024년까지. 지금이라도 교사의 목소리를 들어 주어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왜 십팔 년동안 들어 주지 않았냐고 물어야 하나. 그래도 묻히고 묻혔던 교사의 목소리가 드디어 그들의 귀에 닿고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묻고 싶다. 정부와 교육부는 늘봄학교의 추진 방향이 ‘누구나 누리고 누구나 만족하는’이라고 밝혔다. 이 제도를 진짜로 누리고 만족하는 사람은 과연 부모님과 아이들이 맞는건가요? 늦게까지 아이들 걱정 없이 편하게 일해서 국가의 경제에 기여하라는 것은 아닌가요? 이 정책의 밑바닥에는 부모님과 아이들을 국가와 자본주의 경제를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단순한 도구로 보는 시선이 깔려 있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신가요?
늘봄학교의 비전은 세계 최고 수준의 늘봄학교이다. 내가 경험한 어드벤처 클럽은 미국 전역을 대표하는 늘봄학교가 아니라 겨우 미주리주의 조그만 도시에 불과하다. 그곳에서는 6시에 어드벤처 클럽이 끝났다. 왜냐하면 모든 직장이 6시 전에 끝나니까 더 늦은 시간까지 운영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아이들은 혼자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도 있었고, 관심이 가는 것을 선택해 배울 수도, 친구들과 마음껏 어울릴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넓은 강당과 운동장이 주어졌고 많은 선생님들이 강당, 운동장, 복도에 항상 함께 있었으니까.
십 년 전 나와 우리 아들이 경험했던 미국의 소도시의 일상이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펼쳐질 수는 없는걸까? 대부분의 직장이 다섯 시에는 끝나서 여섯 시에는 아이들을 만나 온 식구가 모여 단란하게 저녁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삶. 아이들이 가정 혹은 돌봄과 늘봄교실을 비롯한 다양한 곳에서 자유롭게 배우고 마음껏 뛰노는 삶. 교육부에서 제시한 늘봄 학교의 비전은 세계 최고 수준의 늘봄학교였다. 하지만 내게 세계 최고 수준의 늘봄 학교는 필요없고 내가 바라는 것은 단지 십 년전의 미국 작은 도시의 돌봄 학교이다. 돌봄의 주체가 선생님에서 늘봄실무사로 바뀐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또 내면 우리의 돌봄도 변화할 것이다. 정부와 교육청이 우리의 이야기를 19년보다는 훨씬 빨리 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자라고 부모님과 아이들이 함께 하는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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