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하늘이는 학교 안에서 40대 여교사가 휘두른 칼에 살해당했다. 아이의 환하게 웃는 사진을 뉴스에서 보며 가슴이 먹먹했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죽음을 당했다고 사람들은 분노하고 슬퍼했다. 하늘이 아버지는 하늘이 법을 만들어 두 번 다시 같은 비극이 생기지 않길 바랬다. 국회의원들은 우후죽순으로 하늘이 법을 발의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위험으로부터 지키는 법이니까 최선을 다해 협조해야지.’라고 각오를 다졌다. 그런데 쏟아지는 하늘이 법을 바라보자 마음 한구석에서 걷잡을 수 없는 공포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될 것만 같은 불안감과 누군가 나를 공격할 것 같은 두려움. 하늘이 법은 또 다른 하늘이를 지키는 법인데 왜 이토록 차갑고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난 자리였다. 대학 동창 지윤이는 하늘이 학교의 선생님과 지인이라며 그 학교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 선생님은 들것에 실려 가는 하얀 천에 뒤덮인 시신을 보며 ‘뭐지?’라고 생각했다. 다른 선생님들은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복도에 흥건한 피를 봤다. 경찰들은 기자들이 보기 전에 피를 치우라고 말했다. 선생님들은 처음 당하는 일에 정신이 얼떨떨해 시키는 대로 그 피를 치웠다. 나중에야 알았다. 하얀 천 아래 자기 학교 학생이 있었다는 것을, 그 복도 위의 피가 그 아이의 것이었다는 것을. 선생님들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범행 일주일 전, 하늘이를 살해한 선생님은 동료 선생님의 목을 헤드락으로 조르며 죽이려 하다가 실패했다. 동료 선생님은 자신도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책하며 고통스러워했다. “하늘이가 그렇게 된 것은 나 때문이 아닐까? 내가 교감선생님께 말씀드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선생님을 고소해 버렸다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
국회의원들은 또 다른 하늘이를 만들지 않겠다고 각종 법안을 우르르 쏟아 놓았다. 교원이 많이 아플 경우 교장이 교육감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필요하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휴직을 시키자. 병으로 휴직했던 선생님이 복직을 신청하면 위원회에서 심의를 받는 것을 의무화하자. 폭력 행위를 하는 교원은 학교의 장이 업무에서 제외시키고 학생의 안전을 위해 CCTV를 설치하자. 그 법들은 교사를 감시하고 관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고 있었다. 교사가 이 사태의 근원적 책임인 듯. 이러한 관점은 국민의 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교사들의 정신건강 및 인력 관리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교원 정신 건강과 관련한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교원들이 관련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하늘이 법에 담겠다.”
관리, 점검, 치료라는 단어들. 그가 교사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었다. 과연 이 법안들로 우리는 또 다른 하늘이를 지킬 수 있을까? 정말 문제 있는 교사를 방치하고 제대로 관리하고 점검하지 않은 현행법과 제도의 문제 때문에 하늘이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일까?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을 하나하나 따져 보자. 우선, 교원이 많이 아플 경우 교장이 교육감에게 지체없이 보고하도록 하는 법을 살펴보자. 하늘이가 다니는 학교 교장은 이미 교육청에 수차례 신고를 하고 도움을 청했다. 다른 법에서는 질환교원심의위원을 법제화하고 아픈 교원이 복직을 신청하면 질환교원심의워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의무화하자고 했다. 하지만 이미 질환교원심의위원회는 있었다. 물론 지금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에서처럼 의무는 아니었지만 얼마든지 교육청에서 위원회를 열 수 있었다. 또 교장이 폭력행위를 하는 교원을 업무에서 배제시키자는 법은 어떤가? 하늘이가 다니는 학교 교장은 그 교사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한 교사가 수업에서 빠진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선생님들이 수업을 더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선생님들은 수고로움을 감내했다.
지금 발의하고 있는 법들이 이미 있었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이 사건의 본질은 법이 아니다. 교육청이 학교가 수차례 도움을 청했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대처하고 교육청이 학교와 선생님의 간절한 목소리를 하찮게 여긴 탓이다. 교육청에서 내놓은 대책은 각종 학교 업무와 민원처리로 바쁜 교감 앞에 그 선생님 책상을 두라는 것이었다. 교육청에서 2월 6일 동료 교사 목을 조르는 사건을 심각하게 여기며 바로 질환교원심의위원회를 열어서 하늘이를 살해한 그 선생님에 대해 즉각 분리 조치를 취했다면, 하다못해 그 선생님 옆에 안전관리 요원이라도 붙여주었다면,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법과 제도만으로도 충분히 하늘이를 지킬 수 있었다.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모든 법들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아동의 안전과 생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교직원의 이상행동이 감지될 경우 신속한 분리 조치등이 가능하도록 학교장의 권한을 확대하고 필요한 경우 해당 교직원을 대상으로 교육 의료, 사회 서비스등을 지원하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교원의 신체 및 정신건강을 지원하는 시책을 마련하자는 법들은 현행 법과 제도를 보완하고 학교가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희망적인 역할을 하리라 기대된다. 하지만 이러한 일부 법들을 제외하고 지금 발의된 법들은 과거 취지는 좋았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던 법들처럼 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아동학대 신고법, 아동학대 방지법, 교원능력개발 평가제 같은 법들.
아동학대 신고법은 아동학대로 의심되면 즉시 신고해야 하는 법이다. 교사는 신고 의무자이기 때문에 이를 어기면 처벌을 받는다. 신고자는 신고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으며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어 두려움 없이 학대 사건을 알릴 수 있도록 보호받는다. 하지만 많은 선생님들은 아동학대를 신고한 후 보호자의 거센 항의를 받곤 한다. 네 까짓게 뭔데 신고하냐는 폭언부터 학교에 찾아와서 가만 안 두겠다는 협박까지. 현실에서 아동학대 신고법은 교사의 의무만 강제할 뿐, 그 의무를 다하는 과정에서 교사가 마주할 위험이나 위협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아동학대 방지법도 마찬가지다. 때때로 아이들을 바르게 교육하려는 교사의 말과 행동조차도 아동학대로 고소당했다. 선생님들은 친구들을 때리거나 욕을 하거나 따돌림을 주도하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데 움츠려 들 수 밖에 없었고 그 피해는 선량한 다른 아이들에게 그대로 돌아갔다.
교원능력 개발 평가는 어떤가? 교원의 능력을 개발한다는 취지로 시작되었지만 정말로 그것에 기여했는가? 오히려 교사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상처를 받게 만들어 둘 사이를 갈등과 분열로 이끌었다. 교원능력개발평가제는 2025년부터 없어지고 2026년부터 교원역량개발지원제로 개선되면서 교원을 평가하는 서술형 문항이 아동이 스스로 자신의 변화를 돌아보는 서술형으로 바뀌었으며 학부모가 교사에게 점수를 매기지 못하도록 달라졌다. 이러한 변화는 분명 긍정적이지만 바뀌기 전까지 십 년이 넘게 선생님들은 악플에 고통받았다. 사람의 심리란 수십 명의 선플이 있어도 단 하나의 공격적인 댓글에 꽂히기 마련이다. 어떻게든 멈추려고 해도 ‘도대체 누가 썼을까? 혹시 어제 지적받은 A? 아니면 항상 말을 비판적으로 하는 B?’하는 생각들이 계속 떠오른다. 사랑하는 우리 반 아이들과 믿어야 할 학부모님을 의심하는 상황은 괴롭다. 누구인지 확실하게 드러나는 비방적 댓글을 봐도 속상한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그 아이를 미워하지 않기 위한 사투를 벌여야 하니까. 교원능력개발평가는 수업에 진심인 교사를 좌절에 빠뜨리기도 했다. 1정 교사 연수에 강사를 맡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고 수업 연구에 열정적인 친구가 울먹거리며 전화를 걸어 왔다.
“ 교원능력개발 평가 점수가 형편없어. 나 정말 열심히 수업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 가르쳤단 말이야. 꼭 알아야 할 영어 문장을 외우게 했는데 아이들이 그게 불만이긴 했어. 그런데 그 활동을 해야 진짜 영어 실력이 늘어. 옆 반 선생님은 점수가 높은데 나도 그 선생님처럼 해야 할까? 대충 편하게 가르치고 간식이나 많이 주고?”
아이들을 위해 모든 힘을 쏟았지만 그 노력이 하찮게 취급당해 친구는 서러워했다. 그날, 교원능력개발 평가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 교사의 의지를 꺽었다.
그 법들과 제도는 아이들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는 교사가 현실에서 무엇을 겪고 느낄지, 어떤 어려움에 처할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했다. 결국, 누군가를 지키려 만든 것이 누군가를 더 깊이 다치게 했다. 지금 발의된 법들도 다르지 않다. 여전히 교사가 무엇을 보고 느끼고 감당해야 할지, 그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파장을 줄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가, 교사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킨 김문수 의원의 교육공무원법 초안이다. 해당 초안은 문제를 일으킨 교사의 직무적합성을 판단하는 심의위원회 심사에 전문가가 아닌 학생, 학부모 등도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갈등이 생겨 교사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휴직을 했는데, 다시 복직하기 위해서는 그 학생과 학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힘들어서 정신적 문제가 생긴 것도 억울한데 나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이 내 복직을 결정한다? 치욕감과 무력감에 멀쩡한 교사도 다시 우울증이 도질까 우려된다. 교사의 입장을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봤다면 나올 수 없는 초안이었다. 왜 교사의 인권을 함부로 다루었을까? 아이들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교사의 인권은 침해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다행스럽게도 거센 항의 문자와 민원 전화를 받아 실제 발의안 내용은 학교 구성원이 아닌 교사의 문제 행동을 경험한 이해 관계자로 변경되었고 이들의 역할도 증인으로 바뀌었다. 만약에 초안이 바뀌지 않고 그래도 발의되었다면 현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날지를 상상하면 마음이 무겁다. 사회가 교사를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관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본다면 우리 아이들은 누가 지킬 것인가? 법이? 법은 도구일 뿐이다. 그 법을 지키는 것은 사람이다. 선생님을 아이들 안전의 주체자로 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법이 아니라 선생님이 아이들을 지킬 수 있다.
십오 년 전 여름, 후배의 허벅지에 선명하게 그어있던 길다란 흉터가 기억난다.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가녀리고 고운 후배와는 어울리지 않은 시뻘겋고 울퉁불퉁한 험악한 흉터라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다. 후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 이 흉터는 오 년 전쯤 생긴 거예요. 우리 반에 아이들을 괴롭히고 때리는 아이가 있었어요. 어느 날, 그 애가 커터칼로 난동을 부렸는데 제가 그걸 막으려다 허벅지가 찔렸죠. 피가 엄청 나왔어요. 정신은 말짱했지만 아이 버릇을 고치려고 일부러 기절한척 해서 구급차에 실려 갔어요. 그 애는 자기 때문에 선생님이 죽는다고 펑펑 울었고 그 후로 다시는 다른 아이들을 때리거나 위협하지 않았죠.”
어떤 보상도 배상도 없었고 후배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피해의식 없이 아이가 폭력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후배가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커터칼을 휘두르는 아이를 맨몸으로 막아야 했을 때 후배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짠하고 아팠다. 선생님은 보호받을 수 없는 건가? 왜 후배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일까? 교사가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교사가 커터칼로 상처를 입었다면 그보다 어리고 약한 우리 아이들은 훨씬 더 위험하다. 교사의 안전과 아이들의 안전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일 년 전, 현명함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대하셔서 닮고 싶었던 선배가 휴직을 신청하셨다. 선배는 반에 한 친구가 다른 친구들을 때리고 다치게 할까 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마음을 졸이시다가 건강이 악화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아이들을 위해 담임을 그만둘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다 그 일이 벌어졌다. 그 아이가 선배 머리를 뒤에서 태블릿 PC로 내리쳤다. 후배가 아이한테 커터칼로 맞은지 이십 년이나 흘렀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교사가 전전긍긍하며 위태롭게 아이들을 지키다 결국 자신도 위험에 처했다. 교실은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어느 때보다 도움이 절실하지만 도움을 청할 마땅한 곳이 없고 설령 도와달라고 부탁해도 적극적인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생님이 아이들과 자신의 안전이 위협당하고 있다고 느낄 때, 즉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과 법, 제도적인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사회는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학교가 도움을 청할 때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선생님의 목소리를 귀하게 여길 줄 안다면 그것은 어떤 법과 제도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해 또 다른 하늘이를 지켜낼 것이다. 법은 변하지 않는 활자이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지만 교사는 살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급변하는 환경과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법을 행동하며 현실에 구현하며 법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법은 교사를 관리하고 감독해야 하는 무기력한 존재로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선생님이 교육의 주체로서 학교를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도록 실질적인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교사를 판단하고 책임을 묻는 데에만 집중하기보다는 그 곁에서 함께 고민하고 더 나은 변화를 이끌어 가는 동반자가 되어주길 바란다. 교사들은 또 다른 하늘이를 지키고 싶다. 그 마음이 외롭지 않도록 사회가 힘을 주기를.
하늘이를 지킬 수 있는 것은 하늘이 법이 아니다.
'초등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상처로부터 나를 지켰던 것은 (0) | 2025.04.20 |
|---|---|
| 나쁜 선생님이 되어 버렸다 (2) | 2025.04.20 |
| 똑똑! 학교 밖에는 아무도 없나요? (0) | 2025.04.06 |
| 현장체험학습의 비극을 멈추려면 (1) | 2025.04.06 |
| 늘봄 교실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되길 (3) | 2025.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