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육

상처로부터 나를 지켰던 것은

사이를 걷는 사람 2025. 4. 20. 16:41

2023718, 서이초에서 1학년 담임을 맡던 2년 차 새내기 교사가 학교에서 목을 매 숨졌다. 그 교사가 맡은 반에서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을 연필로 얼굴로 그은 사건이 발생한 지 5일 후였다. 이와 관련된 학부모 민원으로 고인이 괴로움을 겪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 뉴스를 접하고는 가슴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새내기 교사가 나 대신 죽은 것 같았다.

 

작년에 겪었던 학부모의 폭언과 협박은 내게 큰 상처를 남겼다. 그 일로 나는 정신과를 다니게 되었고 매번 진료를 받을 때마다 그때의 기억은 고통스럽게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학부모는 나를 선생으로서 자격이 없다며 고소하겠다고 했다. 교육청 및 법적 관계자들을 통해 대처 방법을 물어봤다. 학부모의 주장이 터무니없어서 당연히 무죄 판결이 나올 것이라고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가 고소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일반 적인 경우라면 무죄가 되면 고소당한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이 없고 무고죄로 역고소도 가능하지만 내 처지는 달랐다.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잘못이 있든 없든 아동학대로 고소당하면 그 순간부터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나올 때까지 강제로 해임되고 월급도 받지 못한다. 또한 아동학대에 관해서는 무고죄 역고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은 내 상황에 대해 학부모가 교사에게 법이 무조건 불리하다는 것을 다 알고 협박하는 것 같다고 최종 진단을 내렸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아무리 억울해도 선생님이란 이유만으로 그냥 참아야 한다는 거였다. 보호해 주리라 믿었던, 유일한 희망이었던 법은 오히려 가해자 편에서 네가 마음껏 공격해도 돼. 재는 선생님이라서 반격도 못해. 네가 때리면 무조건 맞아야 돼.”라며 나를 조롱하며 열심히 상대방을 부추기고 있었다. 아무것도 나를 지켜줄 수 없다는 현실에 무력감이 들었다. 지옥 같았던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았다. 고추장을 가져오라는 엄마의 말에 고추장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고, 동생 기저귀를 너무 많이 갈아줘서 빨랫감을 많이 만들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사정없이 두들겨 맞았었다.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힘이 생기니까 엄마가 나를 함부로 때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에는 내가 어른이 되면이라는 희망으로 지옥 같은 현실을 견뎠는 데, 어른이 된 지금 여전히 무차별적으로 얻어터지고 있었다. 지금 나는 어떤 희망으로 이 지옥 같은 현실을 버텨야 되는 것일까?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나 역시 2년 차 새내기 교사였던 이십 여년전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삼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그전에 가르쳤던 사학년 학생들과는 많이 달랐다. 민준이는 다른 친구가 자기를 화나게 했다고 가위를 높이 들고는 친구의 손을 향해 거칠게 내리꽂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다행히, 그 친구가 손을 재빨리 피해 다치지 않았다. 놀라서 들이킨 채 멈춰줬던 숨이 내뱉어졌다. 민준이는 가위를 책상에 꽂은 채 손을 부들부들 떨며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씩씩대었다. 민준이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드러누워서 머리와 팔, 다리를 격렬하게 흔들어댔고 동물같이 처절한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좋은 말로 달래 보기도 하고,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러 보기도 했지만, 발작 같은 울음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그 울음은 때로는 한 시간가량 지속되었다. 민준이 어머님과 상담을 했더니 맞벌이라 집에 민준이와 형만 남아 있다고 하셨다. 형은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민준이가 자고 있을 때, 갑자기 양동이로 찬물을 부어버리거나, 시시때때로 민준이를 밀치며 공격을 하곤 했다. 민준이보다 훨씬 체격이 커서 민준이는 늘 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님은 그로 인해 민준이가 피해 의식을 갖고 학교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어머님께 민준이가 집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드렸다. 어머님은 형편상 어렵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다며 깊은 한숨을 쉬셨다.

 

가정사를 들으며 민준이가 왜 그렇게 처절하게 울었는지 알 수 있었다. 민준이는 열 살 어린 나이, 아니 그보다 훨씬 어린 나이부터 자신보다 큰 존재로부터 언제 공격당할지 모르는 위협 속에서 떨며 혼자서 두려움과 공포를 버티고 있었다. 민준이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이 겹쳐졌다. 민준이를 어떻게든 돕고 싶어 여기저기 알아봤다. 마침, 국가에서 위기 학생들에게 무료로 정신과 상담 및 치료를 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담당자에서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는 작년에 전담임선생님이 민준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이미 신청했지만 부모님이 한 번만 데려오셔서 프로그램이 조기 중단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런 경우에는 다시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가 없다고 미안해했다. 도대체 어떻게 도와야 할지 막막했다. 방학 동안 하루종일 두꺼운 심리학 책 열 권을 책상 가득 쌓아 놓고 읽고 또 읽었지만 어디에도 해답은 없었다.

 

민준이뿐 아니라 조그만 일에도 흥분해서 주먹을 휘두르는 남학생들이 대여섯 명 더 있었다. 쉬는 시간에도 쉬지 못하고 아이들이 혹시 싸울까 봐 전전긍긍하며 잔뜩 긴장해서 아이들을 바라봤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았다.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가자마자 저녁도 못 먹고 쓰러지듯 잠들었고 아침에는 화장할 힘도 없어 그냥 머리만 질끈 묶고 걸음을 질질 끌며 학교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때리면 안 되고 폭력은 나쁜 것이라고 훈화를 하고, 때리는 친구들을 무섭게 혼내고 반성문을 쓰게 해도 아이들은 변하지 않았다.

 

성훈이는 수업 시간에 교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반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을 방해했다. 성훈이는 초등학교 삼학년인데 여섯 살 아이처럼 몸이 작고 앙상했다.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아무리 말하고 꾸짖어도 성훈이는 헤실헤실 웃으며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그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도대체 내 말이 성훈이 귀에 들리기나 하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성훈이는 잠시 의자에 앉아 있다가 삼분이 채 지나가기 전에 일어나서 교실을 돌아다녔다. 어느 날, 성훈이 어머님이 오리털 패딩을 들고 찾아오셨다. 겨울인데도 성훈이가 얇은 잠바를 입고 있어서 안쓰러웠었는데 어머님이 패딩을 가져오셔서 기뻤다. 그런데 왜 직접 주시지 왜 나한테 가져왔나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어머님은 이혼 후 성훈이를 볼 수 없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성훈이가 어떻게 지내는지라도 알고 싶어 선생님을 찾아온 것이라고 하셨다. 성훈이에게 엄마가 주신 패딩을 전달했다. 성훈이는 여전히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천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었다. 엄마가 사 준 패딩은 또래 삼학년이 입는 크기였고 성훈이는 너무 작았다. 성훈이가 그 패딩을 입으면 손은 보이지 않고 다리도 일부만 보여서 사람이 아니라 커다란 패딩이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 손이 나오지 않아서 많이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성훈이는 그 옷을 겨울 내내 땟국물이 흐르도록 입고 다녔다. 한참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 어린 성훈이가 안쓰러웠다. 앉으라고 잔소리를 하는 대신 성훈이를 내 무릎에 앉히고 수업을 했다. 성훈이는 엄마 품에 매달린 아기 원숭이같이 내 품에 안겨 교과서를 보았다. 신기하게 성훈이는 수업 시간 내내 무릎에 조용히 앉아 있었고 교과서에 있는 문제를 처음으로 풀기 시작했다. 성훈이는 편안해 보였다. 나도 여리고 약해 부러질 것 같은 성훈이의 작은 몸이 전달해 주는 따스함이 좋았다. 아이들도 성훈이가 어수선하게 돌아다니지 않자 심리적 안정감을 얻은 듯 한결 차분하게 수업에 집중했다.

 

원래 삼학년이 다 이런 건가? 싶었는데 다른 반 선생님들은 이렇게 그림같이 예쁘고 착한 아이들은 처음 봤다고 자기 반 아이들을 칭찬하셨다. 나만 빼고 나머지 여덟 개 반 선생님 모두 행복해하셨다. 나에게 문제가 있구나. 능력이 없어서, 반 운영을 잘못해서, 우리 반에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는구나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없던 능력은 아무리 노력해도 생겨나지 않았고 반 운영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학년 부장님이 교실로 찾아오셨다.

교무실에 자기네 반 학부모들이 선생님이 무섭다고 민원을 계속 넣나 봐. 자기가 아이들한테 소리를 지른다더라. 교장 선생님이 작년에는 안 그러더니 올해는 왜 그러냐고 짜증 내셨어. 애들한테 무섭게 하지 마. 자기 진심으로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문제 있는 교사가 되어 버렸다. 학교에 피해를 끼쳐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무엇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무섭게 하지 말고 소리를 지르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하지만, 민준이가 분노에 차서 공책으로 아이들 머리를 내리치려 하거나, 남자아이들이 주먹을 휘두르면 나도 모르게 지금 뭐하는거야! 그러면 안 되지!”라는 비명 같은 외침이 튀어나왔다.

 

회식 자리였다. 선생님들은 차례대로 교장 선생님께 술을 따랐고 교장 선생님은 선생님들한테 수고가 많아요.”,“선생님이 계셔서 든든해요.”,“학부모님들이 00 선생님 정말 좋다고 난리잖아. 고마워요.”라는 훈훈한 덕담을 하셨다. (내가 신규였던 이십 년 전에는 회식 자리에서 교장 선생님께 술을 따르는 것은 예의라고 여겨졌다.) 내 차례가 되어 술을 따르려고 교장 선생님 옆에서 술병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은 술잔을 내게 내밀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선생님들과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술 따라 드린다고 말할 변죽도 없고 중간에 말을 끊는 것은 예의에도 어긋나는 것 같아 어쩔 줄 몰라 하며 하릴없이 교장 선생님 옆에서 무릎을 꿇고 술병을 들고 기다렸다. 다른 선생님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창피함에 얼굴이 후끈 달아 고개가 자꾸만 숙여졌다. 학창 시절에 잘못을 저질러 무릎을 꿇고 선생님께 벌을 받았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보다 못한 학년 부장님이 농담 섞인 너스레를 떠셨다.

교장 선생님, 술 받으세요. 예쁜 신규 선생님이 술 드리려고 기다리고 있잖아요.”

그제야 교장 선생님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술잔만 내 쪽으로 내밀었다. 술을 따르는데 실수할까 봐 손이 벌벌 떨렸다. 잔에 술이 다 차지도 않았는데 교장 선생님은 술잔을 툭 밀며 술병을 쳤다. 그리고 술잔을 거두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됐어. 애가 이쁘긴 뭐가 이쁘냐.”

얼굴이 아니라 온몸이 화끈거렸다. 수치스럽고 모멸감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내게 돌아온 것은 무능력하고 문제 있는 교사라는 낙인이었고 학부모님의 질타였다 (지금은 학부모님들이 민원을 제기한 것이 일상이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아무도 나의 진심과 노력, 힘듦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결과를 놓고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지 마! 아이들이 무서워하잖아! 선생님이 그러면 되니?”라고 비난을 해대기 바빴다. 그 당시 나는 그들과 똑같이 나 자신을 향해 넌 무능력해. 왜 무섭게 대해! 넌 선생을 할 자격이 없어. 네가 선생을 하는 것은 모두에게 고통이야.”라며 매섭게 자신을 몰아붙였다. 죽고 싶을 만큼 괴롭고 암울했다.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차가운 손가락질만 보였다. 나조차도 내 편이 아니었다.

 

2023812일 토요일, 서이초 선생님을 위한 추모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서이초 새내기 선생님을 위해 말이 아니라 행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또 다른 서이초 선생님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시청역으로 다가갈수록 위, 아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청역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려 한동안 멈춰 서 있었다. 서이초 선생님도, 나도, 혼자인 줄 알았다. 아무도 우리를 보호해 주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서이초 선생님한테 너무 착해. 마음이 그렇게 약하면 쓰나. 그 정도는 이길 멘탈이 있어야지.”라고 쉽게 말했다. 착한 사람, 마음 약한 사람은 선생님을 하면 안 되는 건가? 당신들이 늘 인성을 보고 선생님을 뽑아야 한다고 했잖아. 그래서 나한테는 아이들한테 무섭게 한다고 선생 자질이 없다고 비난했던 것 아니었어? 그런데 왜 지금은 다른 말을 하는 건데? 당신들이 바꾸지 않은 유일한 것은 선생님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아이들을 사랑하면 그런 행동은 할 수 없다고 소리 높이는 것 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미로 속에 갇혀 실험자인 그들의 살처분만 기다리는 생쥐가 된 것 같았다. 그들의 이중성에 숨이 막혔다. 그런데, 여기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착한 사람도, 마음 약한 사람도, 엄격한 사람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애쓴다면 선생님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우리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도 시청역을 가득 메울 만큼 많이... 막혀 있던 숨이 확 터져 눈물이 되어 흘러나왔다.

 

202394, 선생님들은 수업을 거부하고 대규모 추모 집회를 열기로 했다. 교육부는 수업을 하지 않고 집회에 참석하는 선생님들에게 징계를 내리겠다고 위협했다. 202393, 학부모님들이 내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우리 00이는 체험학습 신청서 낼게요. 집회 잘 다녀오세요.’

선생님, 내일 집회 잘 다녀오세요.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우리 아이들 걱정은 하지 마세요.’

선생님, 우리 00이는 맡길 곳이 없어서 보내요. 정말 죄송해요. 힘내세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학부모님들도 선생님이 아프지 않은 세상을 응원하고 있었다. 작년 졸업식 날, 나를 교직에 있어서는 안 될 나쁜 선생님으로 몰았던 한 학부모는 팔짱을 끼고 강당 한구석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시한폭탄 같았다. 행복해야 할 아이들의 졸업식이 망쳐질까 봐 온통 신경이 그 학부모에게 쏠려 그때는 몰랐다. 나를 가득 에워싸며 감사 인사를 건넨 수많은 학부모님들과 아이들이 그 학부모의 눈빛으로부터 나를 지켜냈다는 것을... 상처만 바라보다 보니 상처 준 사람들만 보였다. 상처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보지 못했다.

 

이십 년 전 그때, 내가 상처에 매몰되어 보지 못했던 것들이 떠오른다. 성훈이의 자그마한 몸에서 전해지던 온기, 민준이의 선생님을 웃게 하고 싶다며 야심 차게 포부를 밝히며 시작했지만 어디서 웃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개그들, 한 학부모님의 아이가 선생님이 처음에는 무섭다고 했는데 나중에는 알고 보니 참 따뜻한 사람이라고 했다고 한 말씀.... 그것들이 날 살게 했다. 상처에 스스로 반창고를 붙이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고 감사의 인사를 해야겠다. 그리고 평가와 비난이 아니라, 왜 그 사람이 고통스러운지 살펴보고 함께 마음 아파하며 진심을 알아주고 고통의 순간을 지날 수 있도록 같이 해 주는 세상을 향해 같이 달려 나가야겠다. 그 세상에는 함께 아파하고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에, 모두가 아프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