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육

나쁜 선생님이 되어 버렸다

사이를 걷는 사람 2025. 4. 20. 16:27

선생님, 제가 선생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한테 했더니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나쁜 선생님이 다 있냐고 하더군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선생님 옷을 벗기겠습니다.”

진우 아빠는 단호하게 말했다. 성준이가 진우를 때린 일로 모인 자리였다. 나와 교감선생님, 진우아빠, 진우엄마, 성준이 아빠가 참석했다.

 

그해 겨울에 첫눈이 내렸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눈싸움을 했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다칠까 봐 나의 눈은 열심히 아이들을 쫓고 있었다. 그런데 성준(가명)이가 갑자기 울면서 눈을 가득 움켜준 두 손으로 진우의 어깨를 내리쳤다. 나는 미친 듯이 달려가 성준이의 앞을 막고 다시 진우를 향해 내리치려는 성준이의 두 팔을 잡았다. 성준이에게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다급히 진우(가명)를 살폈다. 진우의 볼에 피가 흘렀다. 성준이가 어깨를 내리치는 과정에서 손이 볼을 거칠게 스쳤나 보다. 진우를 데리고 서둘러 보건실로 갔다. 너무 걱정되어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나에게 보건 선생님은 가볍게 웃으시며 볼의 상처는 별거 아니라고 하셨다. 병원을 가야 하냐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후시딘을 발라도 되고 안 발라도 될 정도라며 진우의 볼에 약을 바르셨다. 마음이 놓여 교실로 돌아와서 성준이를 불렀다. 성준이는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었다. 왜 진우를 때렸냐고 묻자, 성준이는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진우가 먼저 싫다고 했는데도 자꾸 눈을 옷 속에 넣었어요.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멈추지 않아서……. 참을 수가 없었다구요.”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성준이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며 반성문을 쓰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진우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를 건넸다. 둘은 마주 보고 웃으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어깨동무를 했다. 성준이와 진우 부모님께 연락을 할까 고민했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초등학교 아이들한테 다툼은 흔한 일이었다. 물론 지금처럼 때리고 피가 나는 상황은 흔한 일은 아니지만 한 친구가 다른 친구를 일방적으로 괴롭힌 것도 아니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상처는 별것 아니었고 둘은 웃으며 헤어졌다. 괜히 부모님께 말씀드렸다가는 아이들끼리 잘 끝난 일을 헤집어 놔 아이들 사이가 벌어지고 힘들어질까 우려되었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진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진우 엄마는 분노에 차서 진우가 맞은 일을 왜 말하지 않았냐며 소리쳤다. 나는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걱정하셨을 진우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계속 사과했다. 그렇지만, 진우 엄마는 점점 더 흥분했고 말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 “선생님도 아들이 있짆아요. 선생님 아들도 폭력 속에 방치할 거예요? 진우가 그런 선생님을 보고 뭘 보고 배우겠어요?”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쏟아내셨다. 그 이후에도 진우 엄마와 아빠는 여러 차례 전화로 폭언을 이어갔고 그 강도는 점점 더 심해졌다.

 

진우 엄마는 성준이 부모님을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진우 부모님과 성준이 아빠, 교감선생님이 모였다. 이야기가 잘 풀려 성준이가 학교 폭력 위원회에 회부되지 않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바랐다. 처음에는 학교폭력위원회에 넘기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알아봤더니, 학교폭력위원회로 넘기면 선생님 손을 떠나니 선생님은 훨씬 편할 것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상처를 많이 받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힘들어지며 결국 두 아이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고 했다. 진우와 성준이 모두 내 아이들이었다. 진우는 80kg이 넘는 거구지만 나에게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말하며 손하트를 날리는 귀염둥이였고 성준이는 마음이 여리고 착하디착한 순둥이였다. 나 편하자고 사랑하는 두 아이를 진흙탕 싸움으로 보내 상처받게 할 순 없었다. 성준이와 진우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학교에서 어떻게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말씀드렸다. 진우 아빠는 나쁜 선생님이라며 모든 수단을 써서 교사를 그만두게 하겠다고 했다. 진우 엄마는 매몰차게 말했다.

선생님, 진우 괜찮냐고 한 번이라도 물었어요?”

매일매일 여러 번 물어봤어요.’라고 말할 사이도 없이 진우 엄마는 다다다 몰아 부쳤다.

선생님이 상담할 때 말씀하셨지요? 선생님이 진우를 믿고 의지하셨다면서요? 어른이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에요! 아이가 어른을 믿고 의지해야 되는거 잖아요! 우리 진우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겠어요!”

황당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어버버 하는 사이 진우 엄마는 다음 말을 쏟아냈다.

진우 동생 진희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훌륭한 선생님 만났는데 우리 진우는 선생님을 만나... 제가 이런 일로 학교까지 오네요.”

심한 모멸감이 들었다. 훌륭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을 위해 많은 고민을 했고 최선을 다했다. 나름 그것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더구나 진우 같은 경우는 작년 담임 선생님이 다루기 힘든 친구라고 이야기했던 터라 다른 친구들의 두세 배 관심을 기울였다. 교사로서의 자존심이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어머님, 저는 진우를 참 많이 아껴요. 진우가 리더십도 좋고 활발한 친구잖아요. 그래서 의견을 물으면 참 좋아해요. 그래서 물은 거지 다른 것은 없어요. 그리고

진우 아빠가 내 말을 가로챘다.

선생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잖아요. 우리 진우한테 사과 편지 쓰세요!”

순간, 진우 아빠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나쁜 교사가 아니라는 증명이 아니었다.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려서 성준이 생활기록부에 평생 기록이 남지 않는게 중요했다. 그리고 진우도 잘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여차하면 진우의 생활기록부에도 남을 수도 있다. 두 아이 인생에 오점을 남겨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왜 내가 사과 편지를 써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진우 아빠와 엄마는 나에게서 시선을 돌려 성준이 아빠를 바라보았다. 진우 부모님이 성준이 아빠한테 심한 말을 하지 않으시기를, 그래서 성준이 아빠가 상처를 많이 받지 않으시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진우 엄마가 성준이 아빠한테 부드럽게 말했다.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지요. 남자애들이잖아요. 저는 이해해요. ”

순간, ‘뭐지?’ 싶었다. 물론 바라던 대로 되어서 안도감이 들긴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다면서 왜 나한테는 성준이가 진우 때린 사실을 전화로 알리지 않았다는 걸 문제 삼으면서 고소하겠다고 협박을 했던 걸까? 진우 엄마는 성준이 아빠한테 성준이가 진우에게 사과 편지를 다시 써 주기를 부탁했고 성준이 아빠는 그러겠다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훈훈한 마무리였다. 그래, 나 하나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모두가 잘 되었으니까 그걸로 되었다.

 

상담실에서 부모님들을 모두 보내고 혼자 교실로 돌아온 나는 영혼이 털린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성준이 아빠가 교실에 들어왔다. 내가 성준이를 위해 치욕을 참고 애써준 것에 대해 고생했다고 감사하다고 하려고 오신 줄 알았다. 그런데, 성준이 아빠는 의자를 탕 소리가 나게 끌며 앉았다.

선생님, 진우 부모님한테 성준이는 사과 편지 쓸 수 없다고 전화해 주세요! 사과 편지가 법적 증거로 쓰일 수 있다면서요.”

허탈했다. 다 털렸다고 생각한 영혼을 성준이 아빠가 탈탈 털어 뭐가 남았나 확인 사살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이 걱정에 부모 마음이 그럴 수 있다고 나 자신을 추슬렀다. 성준이 아빠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진우 부모님이 나한테 적대적이라서 내가 말씀드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으니 성준이 아빠가 전화로 잘 말씀드려 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그러자, 성준이 아빠는 버럭 화를 냈다.

선생님, 발 빼시려는 거예요?”

순간, 가슴속에서 분노가 치솟았다. 성준이한테 좋은 방향으로 방향을 제시한 건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진우 부모님은 아이가 다쳤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런데 성준이 아빠만큼은 내게 그러면 안 되는 거지 않나? 내가 누구 때문에 그 굴욕감을 견뎠는데... 터져 나오려는 화를 애써 눌렀다.

그게 아닙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진우 부모님께 전화드려서 사과 편지 못 쓰겠다고 말씀드릴게요.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 것뿐입니다. 저는 지금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 결과는 아버님이 책임지셔야 합니다.”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성준이 아빠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전화를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3월 가정환경조사서에 성준이가 욱하는 성격이 있으니 잘 살펴달라고 썼는데 왜 성준이를 게대로 살피지 않았냐고 따졌다. “선생님이 우리 아들을 잘만 살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 기가 막혔다. 제가 신도 아니고 당신 아들이 순간적으로 폭발해서 다른 친구를 때릴 것을 미리 어떻게 아나요?

아버님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제가 성준이를 각별히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성준이를 보고 있었고 그래서 두 대에 끝난 겁니다. 만약 제가 말리지 않았으면 두 대가 아니라 여러 대였을 겁니다.”

성준이 아빠는 눈을 부릅뜨며 위압적으로 말했다.

선생님, 이렇게 나오시면 저는 학교폭력위원회에 넘기겠습니다. 그러면 선생님 입장이 곤란해지시겠죠?”

하다 하다 이젠 협박까지. 이런 사람을 위해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애썼구나 싶어 허탈했다. 성준이 아빠도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고소하겠다는 진우 아빠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훨씬 더 심하다. 성준이 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남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온갖 수치를 버티며 미안하다고 빌고 또 빌었다. 최소한 성준이 아빠만큼은 내게 이러면 안 되지 않나. 실소가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학교폭력위원회는 열리지 않았고, 진우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어떻게 그런 선생님이 있냐며 교무실을 들쑤셔 대었다. 졸업식 날, 진우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 아이들이 나한테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것을 지켜보며 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보았다. 마치 시한폭탄 같았다. 갑자기 터져서 아이들의 행복한 졸업식을 난장판으로 만들까 봐 식은땀이 났다. 모든 엄마들과 아이들이 떠난 후에, 진우 엄마는 내게 와서 냉소적으로 한마디를 하고 휙 돌려 밖으로 나갔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선생님은 결국 해피엔딩이네요.”

해피엔딩?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제는 아이들이나 학부모님들을 진심으로 대할 자신이 없어 선생님을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왜 해피엔딩이라고 하는 건지. 그들이 휘두른 말의 칼날에 베여 피를 흘리고 아파하고 있는데 그게 전혀 보이지 않는건가? 모두가 상처를 치유하고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나 따윈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진심이 짓밟히고 패대기쳐져도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아무도 치유받지 못했고 행복해지지 않았다. 진우 엄마와 아빠, 성준이 아빠 모두 나쁜 선생님인 나 때문에 분노에 차 있었다. 싹싹하고 유쾌했던 진우는 선생님들에게 무례하게 굴며 안하무인처럼 변했다. 성준이는 학교 폭력위원회가 열릴까 봐 두려움에 떨며 위축되어 갔다. 둘의 사이는 차가운 냉기가 흐르며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두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무력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나처럼 엄마로부터 학대받은 아이들의 영혼을 치유해 주고 싶어서 선생님이 되었는데 지금 나는 치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린 시절 그때처럼 폭력을 당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뿐 아니라 모두의 상처는 점점 더 깊어졌으며 아무도 치유받지 못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친구한테 맞은 진우, 짓궂은 장난으로 괴로웠던 성준, 아들이 맞고 왔는데 전화도 안 한 선생님한테 상처받은 진우 엄마, 아빠,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릴까 봐 노심초사하는 성준이 아빠, 모두의 마음을 살피고자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거지?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 한 사람이 빠졌었다.

 

그건 나였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때리자 둘 사이에 끼여 들어가 막았다. 아이들 둘 다 170cm가 넘는 거구에 몸무게도 80kg에 달했는데 비해 나는 그들보다 키도 작고 몸무게도 훨씬 적었다. 그런데도 주저하지 않고 주먹을 내리치려는 아이를 막아섰다. 그런데 아무도 나에게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고 잘했다고 하지 않았다. 나조차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선생을 그만두어야 마땅한 나쁜 선생님, 골치 아픈 일에서 발을 빼고 싶어 하는 비겁한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 내가 그들의 상처에만 주의를 기울이자 그들의 상처는 힘을 얻었고 진실이 되었다. 나의 상처도 살폈어야 했다. 그들에게 아이들을 지키느라 최선을 다했습니다. 부모님들 못지않게 아이들을 보호하느라 애썼던 저의 노력과 헌신을 그렇게 하찮게 취급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그들이 나의 상처도 보도록 했어야 했다. 그들의 상처에만 관심을 기울였더니 진실이 왜곡되었다.

 

미국의 시인 존 고드프레이 색스의 장님과 코끼리의 시에서는 코끼리를 보는 여섯 명의 장님이 나온다. 코끼리의 옆구리에 부딪힌 장님은 코끼리를 벽, 상아를 만진 장님은 창, 코를 만진 장님은 뱀, 무릎을 만진 장님은 나무, 귀를 만진 장님은 부채, 꼬리를 만진 장님은 밧줄로 생각한다. 장님들은 서로가 맞다고 싸운다. 서로의 부분과 부분이 모여 합해졌다면 코끼리라는 실체에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진실은 나는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아이들한테 관심이 없는 나쁜 선생님도, 곤란한 상황에서 발을 빼고 싶어 하는 비겁한 선생님도 아니었다. 나는 나의 안위는 기꺼이 내던질 수 있을만큼 아이들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었고 최선을 다했다. 누구보다 진실을 잘 아는 내가 침묵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만 마음을 주는 사이, 진실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쁜 선생님, 비겁한 선생님이라는 잘못된 진실은 모두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었다. 내가 나의 상처를 돌아보고 보여줬다면 그들은 진실을 바라보게 되었을 것이다. 진우 아빠, 엄마의 전화를 안 했냐는 비난, 깊숙이 들어가 보면 선생님이 진우에게 관심이 없다는 오해가 있었고, 성준이 아빠의 발 빼실거냐는 비아냥거림 밑바닥에는 이 상황을 혼자 감당하기 힘들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진우 부모님에게 진우를 정말 사랑하니까 저보다 훨씬 덩치가 큰 성준이를 막아서 진우를 보호할 수 있었던 건데 무관심하다고 원망하시니까 억울하다고 말했다면, 성준이 아빠한테도 성준이를 위해 온갖 치욕과 굴욕을 참아 냈는데 아버님이 비겁한 선생님으로 폄훼하니까 내가 왜 그렇게 성준이를 위해 애썼나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면, 그들은 사랑과 관심을 가진 선생님, 갖은 노력으로 아이 편에 어떻게든 서려고 애쓰는 선생님이라는 진실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원망과 두려움은 사그라졌을 것이다. 나의 상처는 그들의 상처가 오해로 비롯된 것임을 증명해 줄 수 있었다. 상처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그들이 듣고 싶었던 것은 속상하셨겠군요, 제가 잘못했어요.’란 나의 어설픈 공감과 자아비판이 아니고 진우와 성준이를 참 아끼고 사랑해요. 진우와 성준이를 위해서 못할 게 뭐가 있겠어요.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했는데 저를 비난하시니 많이 아프네요.’란 나의 절절한 진심이 아니었을까. 뒤늦게 깨달아 본들, 시간은 이미 흘러가 돌이킬 수 없었고, 나의 이랬으며 저랬으면 하는 가정들은 가보지 못한 과거일 뿐이며 모두 상처받은 채로 결말이 났다.

 

2022년의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