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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니

십년 전, 학교에서 머릿니가 유행이라서 아이들 머리를 검사했다. 머릿니가 있는 아이들 어머님들께 따로 전화를 드렸다. 1주일이 지난 후, 한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친구들이 놀릴까봐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선영이의 말에 안심이 되었다고. “우리 선생님도 어릴 때 머릿니가 있었대. 그래서 선생님이 친구 머릿니 있다고 놀리면 그건 선생님을 놀리는 거라고 그랬어.” 어릴 때 나도 머릿니가 있었던 게 천만다행이다.

초등교육 2026.06.02

초등학교 6학년이지만 정신 연령이 두 살인 아이를 가르친 적이 있다. 그 아이는 항상 빳빳하게 다려진 셔츠에 면바지를 입었다. 아동복 모델 같았다. 아이를 학교에 데리고 온 어머님께 말했다. “어쩜 이렇게 매일 예쁘게 옷을 입혀 보내세요?” 어머님은 웃었다. “우리 아이가 옷이라도 예쁘게 입으면 사람들이 좀 더 따뜻하게 말해주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러면 아이의 하루가 더 행복해 질 것 같아서요.” 누구나 사랑을 알고 있지만 온전히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어머님은 그냥 매일을 그렇게 살고 있었다.

초등교육 2026.05.31

선생님의 비밀 일기장

학부모에게 상담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다른 친구를 때렸다. 어머님은 우리 아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다, 때렸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을꺼라고 하셨다. “선생님, 작년 생기부 보셨을 거 아니예요? 우리 아이가 모범생이라는 것 다 나와 있잖아요.”물론 보았다. 선생님들은 진실을 쓸 수 없다. 그러면 교감 선생님께 불려 가니까. 교감 선생님도 어쩔 수 없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최대한 긍정적인 말로 써야 하는 지침을 어길 수 없으니까. 나이스에는 생활기록부도 있지만 ‘개인행동발달 상황’이라는 항목이 있다. 그 항목은 절대 공문서에는 들어가지 않고 학부모가 볼 수 없다. 한마디로 아이들 장래와 교육부 지침과 상관이 없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그 곳에 진실을 담는다. 선생님들의 ‘비밀 일기장’. 아이의 생활 지도가 ..

초등교육 2026.05.28

살아 있는 삶이 다시 찰랑거릴 때

진통이 시작된 지, 삼십 시간이 넘어갔다. 통증을 수치화해서 보여주는 미터기는 이미 한계치인 100을 넘은 지 오래였다. 찌릿찌릿한 고통이 칼날처럼 온몸을 가르고 지나갔다. 더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께 무통 주사를 놔달라고 했더니 자궁문이 6센티미터쯤은 열려야 한다며 확인해 보신다 했다. 삼십 시간이 넘었으니 어느 정도 열려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돌아온 숫자는 1센티미터. 남들은 그냥도 열린다는 1센티미터에 삼십 시간이 걸렸다니, 도대체 언제까지 이 고통을 견뎌야 하는 걸까. 정신이 아득해졌다. 제왕절개라는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 순간, 몸의 힘이 스르르 풀렸다. 더는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밀려온 것도 잠시, 갑자기 몸이 차가와졌다. 온 몸이 경련을 일으키며 바들바..

가족 2026.05.26

과거의 상자 속에서 나오기까지

열 살인 아들의 몸 반절은 딱딱한 나무토막 같았다. 왼쪽 팔은 곧게 뻗어 있었고 일정한 속도로 빠르게 올라갔다 내려왔다. 얼굴은 굳어 있었고, 반쯤 열린 눈은 천장에 그대로 걸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움직이는 태엽 인형을 보는 듯 했다. 그 모습이 기괴하고, 무엇보다 그 아이가 우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꿈을 꾸는 것 같았다. 119에 전화를 걸어 숨을 고르기도 전에 말을 쏟아냈다. 구급대원은 경련이 얼마나 지속됐는지 물었다. “오 분은 넘은 것 같아요.” 짧은 대답이 끝나자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긴박해졌다. 오 분이 지나면 많이 위험하다고 했다. “제가 너무 놀라서 오 분이 넘었다고 말한 건 아닐까요? 실제로는 오 분이 안 됐을지도 몰라요” 울음인지 말인지 모를 소리가..

가족 2026.05.24

교실에서 고객을 상대한다는 것

예전 학교에서 나는 선생님이 아니라 백화점에서 VVIP 고객을 상대하는 직원이 된 것 같았다. 학부모들은 우아한 어조로 주문했다.“우리 아이가 왜 친구를 때렸는지 마음은 읽어 주셨나요?” “작년 선생님은 정말 훌륭하셨어요. 그림책을 읽어주고 아이들 생각을 물어봐 주셨어요. 저희 아이가 발표도 잘하고 생각도 깊이가 있다며 반에서 제일 뛰어나다고 칭찬하셨죠. 선생님도 그런 활동하시면 아이들 사고력 키우는데 도움이 많이 될텐데……” 때로는 24시간 고객선터 상담 직원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새벽 두세 시에 아이가 친구에게 놀림을 받았다는 긴 카톡이 올라오기도 했고 토요일 날 학부모가 전화를 걸어 알림장 내용을 알려 달라 하기도 했다. 그런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나는 아이들을 위해 그것조차 하지 않는 사람..

초등교육 2026.05.21

똑똑! 학교 밖에는 아무도 없나요?

“선생님, 수영 학원에서 준서가 동윤이를 놀려서 동윤이가 속상해해요. 준서가 그러지 못하도록 부탁드려요.”동윤 어머님의 말씀에 ‘수영 강사님한테 이야기하시지 제가 왜?’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삼킨다. 특공무술 학원에서 옆 반 아이가 무술 못 한다고 웃었다고 기분 나빠서 사과받고 싶다고 하는 도경이한테 ‘왜 나한테?’라고 터져 나오려는 말을 꾹꾹 누른다. ‘그래, 다 우리 반 아이잖아. 학원보다는 학교에서 생활 지도하는 게 더 좋겠지.’마음을 다잡으며 아이들을 불러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마음을 풀어주고, 학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안심시켜 드리지만, ‘왜 그곳에 있지도 않았던 내가?’라는 억울함이 스멀스멀 자꾸만 기어 나온다. 법에서는 학생이 피해자라면 장소가 학교 밖이어도 학교폭력이라고 규정한다. 그래..

초등교육 2026.05.19

사소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

초등학교 1학년 때, 하교 길에 엄마가 쥐여 준 50원으로 깐도리를 사 먹곤 했다. 50원으로 살 수 있는 아이스크림은 깐도리 뿐이었지만 괜찮았다. 깐도리를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기뻤다. 뭉텅뭉텅 베어 먹고 싶었지만 그 달콤함을 빨리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혓바닥으로 조금씩 핥아 가며 그 시간을 어떻게든 길게 늘였다. 한번은 깐도리를 사 먹을 수 있는 너무나 소중한 50원을 잃어버릴까 걱정돼, 어디에 둘까 고민하다가 국어책 속에 끼워 두었다. 웬지 책가방 속 큰 공간에 덜렁거리도록 넣어 두는 것보다 책 속에 끼워 두면 책이 안전하게 보호해 줄 것 같았다. 그런데 학교에서 국어책을 펼쳐 보니 동전이 보이지 않았다. 모든 페이지를 펼치며 샅샅이 뒤졌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속이 상해 ‘으..

초등교육 2026.05.17

현장체험학습 2018년과 2026년

2026년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학교의 현장학습 위축에 대해서 책임을 안 지려고 학생들의 소중한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교사들에게 정확히 이렇게 일침을 날렸다."혹시 구더기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장독을 없애버리면 안 되죠."나는 이재명 대통령을 좋아하고 그 열정과 유연한 일처리에 감탄한다. 하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무림고수가 되어 이재명 대통령에게 독침을 날려 버리는 상상을 해버리고 말았다. 2022년 강원도의 한 초등학교 현장체험학습 도중 한 학생이 숨진 사고와 관련하여 법원은 담임교사에게 유죄를 선고하였다. 유죄판결 이후 현장체험학습이 급격히 감소하였다. 교육청은 안전 요원을 늘리고 손해배상과 소송 지원을 하겠다고 나섰다. 교육청은 여전히 선생님의 일은 남의 일로..

초등교육 2026.05.12

아름다움을 축복하는 시간

백반증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아빠는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 이야기를 엄마에게 꺼냈다. “예전에 알던 사람인데 말이야. 얼굴이며 온몸에 하얀 반점이 퍼져 있었어. 괴물 같더라. 끔찍했어.”진주 목걸이로 가려보려 했지만 가려지지 않아서 짠했다고 했다. 아빠는 사람이 그렇게도 변할 수도 있다며 놀라워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일 년 전부터 내 몸에도 흰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빠가 말한 그 ‘괴물 같은 사람’이 될 것 같아 심장이 떨렸다. 무서웠다. 두려움을 견딜 수 없어 말을 급하게 쏟아냈다.“아빠, 흰 반점이라면 나도 있어요!” 아빠와 엄마는 일시 정지된 것처럼 그대로 멈췄고 정적이 흘렀다. 아빠는 정신을 차리시고 내 손과..

가족 2026.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