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친구가 카톡방에 이상한 제목의 글을 올렸다. 제목은 ‘아동학대법에 걸리지 않고 폭행당하는 철수를 구하는 방법은?’이었다.
5교시 수업 중에 영수와 철수가 말다툼을 하다가 화가 난 영수가 철수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이때 아동학대법에 걸리지 않고 철수를 구하는 올바른 방법을 고르시오.
1번: 영수가 철수를 때리지 못하도록 영수의 팔을 잡는다.
2번: 영수가 깜짝 놀라 멈출 수 있게 강한 어조와 큰 목소리로 말린다.
3번: 반 아이들 앞에서 친구를 때리면 안 된다고 영수의 잘못을 나무란다.
4번: 영수를 철수와 분리하고 영수를 교사 휴게실로 데려가 다른 아이들이 볼 수 없는 곳에서 영수를 꾸중한다.
5번: 영수에게 다가가 친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지 마세요”라고 한다.
1번: 영수가 철수를 때리지 못하도록 영수의 팔을 잡는다.
당신은 아동의 신체를 구속하였습니다. 아동학대법으로 고발당했습니다.
2번: 영수가 깜짝 놀라 멈출 수 있게 강한 어조와 큰 목소리로 말린다.
영수는 당신이 크게 소리친 것에 공포를 느꼈습니다. 정서적 아동학대로 고발당했습니다.
3번: 반 아이들 앞에서 친구를 때리면 안 된다고 영수의 잘못을 나무란다.
영수는 친구들 앞에서 꾸중을 들은 것에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당신은 정서적 아동학대로 고발당했습니다.
4번: 영수를 철수와 분리하고 영수를 교사 휴게실로 데려가 다른 아이들이 볼 수 없는 곳에서 영수를 꾸중한다.
당신과 둘이 있는 공간에서 꾸중을 들은 영수는 당신의 꾸중을 위협과 협박이라고 느꼈습니다. 당신은 아동학대범입니다.
5번: 영수에게 다가가 친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 하지 마세요”라고 한다.
이번에는 영수로부터의 아동학대 신고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연수는 철수를 때리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고 철수는 전치 5주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번에는 철수 부모님이 당신을 아동학대 방임으로 고발합니다.
글은 ‘여기 정답은 없고 철수와 도망가며 수업하기가 정답이래요.’로 끝을 맺었고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풍자로 보이지만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퀴즈는 초등학교 선생님 커뮤니티에 올라왔던 게시물의 내용과 흡사했다. 선생님은 반 아이의 폭력 수위가 심해 적절한 대처 방법을 교육청에 문의했다. 관계자는 폭행하는 아이를 붙잡으면 안 되고 맞는 친구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함께 데리고 도망가야 한다고 응답을 주었다. 또한, 수업권을 침해하면 안 되니까 수업도 하면서 때리는 친구도 방임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기가 막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관계자는 얼버무리며 법이 그렇다고 답했다며 선생님은 분개하셨다.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교육을 해야 하는 선생님한테 도망가라고 하는 법이라니 기가 찼다.
교직 생활 이십 년 동안 나는 한 번이 아니라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아동학대법을 위반했다. 심지어 나의 만행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오늘도 수업 시간에 친구가 발표하는 도중에 끼어들어 “그게 말이 되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라고 면박을 준 아이 두 명을 반 아이들 앞에서 꾸중했고 쉬는 시간에는 심폐 소생 놀이를 한다며 누워 있는 친구의 가슴을 향해 점프해서 앉으려는 친구의 몸을 세게 붙잡았으며 점심시간에는 계단 난간에 올라타 위태롭게 다리를 대롱거리는 아이를 향해 당장 다리를 내리라고 강한 어조와 큰 목소리로 말리며 범행을 저질렀다.
몇 년 전에는 아이의 팔에 시커먼 멍까지 들게 했으며 어머님께 이런 말씀도 들었다.
“ 선생님, 목욕을 시키다가 지나 팔에 멍을 발견했어요. 어쩌다 이렇게 되었냐고 물으니까, 선생님이 때렸다고 해요.”
팔에 있는 멍, 선생님이 때렸다고 하는 아이의 증언, 게다가 아이는 지적 장애. 누가 봐도 파렴치하고 악독한 아동학대범이었다.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심장은 사정없이 뛰어대고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다.
“실은 급식 시간에 일이 있었어요.”
지나는 지적 연령이 여섯 살 정도에 멈춰 있었지만 사랑을 듬뿍 받은 티가 나 늘 밝았고 학교생활도 별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틀 전 점심시간에 급식 당번의 집게를 뺏더니 자기가 좋아하는 반찬을 마구잡이로 식판에 담고는 쏜살같이 자리에 앉아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데다 처음 있는 일이라서 나도 아이들도 멍하니 정신을 잃고 서 있었다. 지나를 친동생처럼 알뜰살뜰 살피던 아이들이었지만, 맛있는 반찬이 이리저리 헤집어지고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보자 표정이 구겨졌다. 아이들이 혹여 지나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질까 봐 서둘러 급식실에 연락해 반찬을 더 갖다 달라고 하고 아이들을 다독이며 지나한테도 그러면 안 된다고 차근차근 설명했지만 이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다음날, 급식대 옆에 서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지나가 순조롭게 밥과 국을 담아 안심하고 있었는데, 돌변하여 집게를 빼앗아 반찬을 담으려고 했다. 나는 “안 돼.”라고 말하며 지나의 팔을 붙잡았다. 지나는 몸을 흔들며 뿌리치려 했고 식판 위에 국이 출렁거렸다. 뜨거운 국물에 화상을 입을까 봐 겁이 나서 팔을 더 꽉 잡았다. 팔을 놓을까도 생각했는데 그러면 중심을 잃고 지나가 쓰러지거나 식판이 엎어져서 더 위험한 상황이 될 것 같았다. 한참 안간힘을 쓰던 지나는 다행히 힘을 풀었고 언제 자신이 생떼를 썼냐는 듯이 말끔한 얼굴로 예전처럼 차분하게 식판에 음식을 받아 그림같이 의자에 앉아 급식을 먹었고 이후에는 다시는 그러지 않았다. 어머님께서 고생 많으셨다고 내 말을 믿어주셨기 망정이지 아이 말만 듣고 팔에 있는 멍 사진을 찍어 경찰서에 제출하셨다면 아동학대범이 되는 거였다. 아동학대법을 따른다면 고운 말로 “급식 당번이 주는 대로 반찬을 받아야 하는 거야”를 반복했어야 했다. 하지만 지나같이 지적 장애인 학생이나 저학년인 경우는 말의 내용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엄한 말투로 잘못된 것을 분위기를 통해 느끼게 하고 팔을 붙잡으며 하지 못하도록 직접적으로 교육을 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물론 나도 애초에 아동학대법을 어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린 시절 엄마한테 학대를 당했기에 아동학대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저몄다. 그리고 학창 시절에, 때린 흔적은 안 나면서 정말 아픈 방법을 개발했다면서 내 손가락 뼈마디를 쇠로 만든 자로 내리치던 선생님의 뿌듯한 표정, 교복 치마를 짧게 입었다고 네 원대로 해준다며 친구의 치마를 벗겨서 교무실에 세워 두었던 선생님의 무심한 눈빛은 지금도 나를 괴롭힌다. 가장 섬세하고 예민할 때여서 가장 상처받기 쉬웠던 그 시절, 중2인 친구는 까만 스타킹만 입은 채, 울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제발 치마를 돌려 달라고 애원했었고 교무실에서 선생님과 상담하고 있던 나는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푹 숙여야만 했다. 참혹했다. 어른들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의 멍든 가슴을 치유해 주고 싶어서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그래서 아동학대법이 처음 생겨났을 때 기뻤고 누구보다 잘 지키고 싶었다. 아동학대법이 생기고 나서 교단은 변하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의 폭언과 폭행은 놀라운 속도로 사라져갔고,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부당한 매질과 모욕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이 존중받길 바라던 소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때로는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화를 주체하지 못해 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교육적 지도가 아이들에게 매번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되나? 아이들이 얼마나 상처받았을까?’라고 자책과 반성의 밑바닥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각종 연수와 책을 통해 공부하며,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들과 학부모를 살펴 그들의 입장에 맞추려 했고 크고 강한 어조 대신 부드럽고 상냥하게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으며 서로를 존중하는 행복한 교실을 꿈꿨고 가끔은 실현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내 꿈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자신들의 말에 귀 기울여 준다고 처음에는 좋아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몇몇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내가 그들 편에 서서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을 당연시하기 시작하고 점점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주장들이 거세지며 나중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하기에 다다른다. 들어줄 수 없다고 하면 불평과 비난 심지어는 인격적인 모독으로 치닫기도 하고 반 분위기는 그들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제비뽑기로 자리를 정했지만 원하는 짝이 되지 않았다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나를 째려보던 아이, 체육을 교육과정에 정해진 시간보다 더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더 요구하는 아이들에게 다른 교과도 공부해야 하니까 더는 힘들다고 조곤조곤 설명했더니 ‘선생님 안티 카페 회원 모집! 선생님은 물러나라’라고 큼지막하게 칠판에 적어 놓고 반항적으로 대들던 아이, 퇴근 이후에도 사소한 문의로 계속 울리던 학부모들의 전화벨 소리, 토요일에 전화해서 가정통신문이 도대체 어디 있냐고 막무가내로 화를 내서 가방 안 파란색 비닐파일를 보시라고 상냥하게 응대했더니 “있네요.”하고 전화를 뚝 끊던 학부모들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아직 미숙해서 지금은 힘들지만, 끊임없이 노력만 한다면 온화한 말만으로도 충분히 아이들과 학부모들과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반 학부모가 우리 반 아이를 학교폭력위원회에 걸겠다고 했다. 우리 반 아이가 다른 반 아이의 사진과 개인 신상 정보를 게임에서 만난 사람에게 줬다는 것이었다. 6학년 2학기는 다른 학년이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관련 기록이 삭제되는 것과는 달리 그대로 기록이 남겨진다. 그래서 학교폭력위원회에 넘겨져 아이의 미래에 영향이 갈까 봐 걱정이 많이 되었다. 더 나아가, 다른 반 학부모님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셨다. 여기저기 알아본 끝에, 우리 반 어머님께 사설 기관을 고용해 사진 관련 기록을 인터넷상에서 싹 지우도록 의뢰를 부탁드렸고 다른 반 학부모님께는 하루에도 몇 시간씩 통화하며 용서해 달라고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교육을 철저히 하겠다고 사정 사정을 했다. 다행히, 그냥 넘어가기로 하셔서 고마웠고 안심이 되었다. 우리 반 아이한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친구의 사진을 넘긴다는 게 얼마나 심각하고 위험한 일인지를 알려주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며 신신당부했고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알겠다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한 달 후,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했다. 그날 그 친구 엄마한테서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 선생님, 우리 아이 저격한 거예요? 다시는 그런 교육을 해서 우리 아이 상처받는 일은 없도록 해주세요!”
순간,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강타했다. 한 달 전에
“어머님, 일단 사진을 인터넷상에서 싹 지우셔야 해요. 사설 기관에 의뢰하셔야 하는 데 돈이 많이 들 거에요. 괜찮으시겠어요?”
라고 묻자, 자식을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하셨던 어머님이셨다. 그 무슨 일에는 교육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건가? 중간에서 내가 아이를 위해 얼마나 애쓴 것을 다 아시면서 어떻게 아이를 저격한다고 하실 수가 있지? 혹시라도 아이가 오해할까 봐 단어 하나도 조심해서 썼고 아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도 않았다. 아이는 어리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해도 부모가 바로 잡아 주어야 하지 않나? 아이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를 가르치지 말아야 하는가? 그리고 다른 아이들이 왜 그 아이 때문에 꼭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해야 하지? 그건 아니지 않나? 하지만, 아무리 교사가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어도 아이한테 정서적 피해를 줬으면 아동학대에 해당한다. 아동학대법을 지키고 나 자신을 보호하려면 디지털 교육을 더 이상 실시하면 안 된다. 그럴 수는 없었다. 어머님께 교육을 계속할 거라고 말씀드렸다. 예전에도 디지털 교육을 두 번이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잘 몰라서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계속해서 알려줘야 하지 않냐, 일 년에 세 번 이상 하기로 3월에 이미 계획을 세워 놓았는데 변경할 수 없고 다른 반 학부모한테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교육을 더 철저히 하겠다고 나를 믿어달라고 했는데 그 약속을 어길 수 없다고 했다.
그때부터였다. 아동학대법을 지키는 것에 대한 강한 회의가 들었다.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봐 전전긍긍하다 보니 정작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통렬한 반성이 가슴 깊은 곳에서 치고 올라왔다. 교육의 본질은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주는 것이다. 나는 제대로 교육하고 있는 것인가? 갖은 노력을 했지만 아동학대법을 지키면서 교육까지 할 수는 없었다. 둘 다 잘 하려고 하다가 결국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버렸다. 아니, 나의 교실은 바른 목소리가 아니라 큰 목소리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고 아이들은 이기적이고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다. 실패와 한계를 인정하고 이제는 선택할 때였다. 아동학대법을 지키면서 목소리 큰 사람이 교실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교실 붕괴를 계속 맞이할 것이냐, 아니면 아동학대법을 어기면서 때로는 아이가 펑펑 울더라도 인격 모독적인 말이 아니라면 엄중하게 대해서 잘못된 것을 바르게 알려주며 교육의 본질을 지킬 것이냐. 그래서 나는 그토록 싫어하던 아동학대범이 되기로 결심했다.
아동학대의 유형 중 정서학대에는 아동에게 행하는 언어적 폭력, 정서적 위협 외에 아동에게 비현실적인 기대 또는 강요하는 행위 등이 있다. 교육의 특수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동학대법을 교사에게도 똑같이 적용하도록 하는 정치가와 법률가, 정책 담당자들에게 묻고 싶다. 아동학대법을 지키면서 교육을 하라고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기대이고 강요인지 알고 있냐고. 아이가 친구한테 폭언, 폭행, 인격 모독적인 발언, 수업을 방해하는 행위를 했을 때, 교사는 정당한 방법으로 이를 막고 바르게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교사는 ‘아동학대법을 지키면서 교육하라’는 요구가 마치 손발을 묶어 놓고 달리라고 하는 것 같다고 무기력과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교사의 물리적 제지는 또 다른 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들이야말로 맞고 있는 학생과 도망가면서 수업하라는 비현실적이고 비겁한 강요로 교사를 학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구타당하는 아이, 두려움에 떨며 모든 것을 지켜보는 또 다른 아이들도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현장에서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것이고 어떤 모습으로 자라날 것인가. 아동학대법은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그 법이 폭력을 행사하는 어린이만을 보호하는 법이 아니라, 맞고 있는 어린이와 그것을 지켜보는 어린이들도 보호할 수 있는 법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 때리는 학생의 두 손을 힘차게 붙잡고 “그러는 것 아니야.”라며 불의에 대응하며, 폭력의 현장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다른 학생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힘과 용기를 교사에게 주는 법으로 우뚝 섰으면 한다. 교사들은 이제 손발을 풀고 아이들과 함께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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