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엄마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사이를 걷는 사람 2026. 4. 5. 18:36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엄마가 왜 그토록 화를 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403호 아줌마한테 갖다 드리라던 반찬을 304호에 잘못 전해드렸던 것 같다.

 

엄마가 무언가를 시킬 때마다 몸이 얼어붙었다. 머리는 생각하기를 멈추고 하얀 장막만이 끝없이 펼쳐졌다. 엄마의 말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저기서 옷 좀 가져와.”

저기가 어딘데? 서랍은 왜 이리 많고, 어떤 걸 열어야 하지? 어느 옷을 말하는 걸까. 옷장 앞에 망연자실해 서 있었더니 엄마의 손이 등을 세차게 후려쳤다. 몸이 앞으로 휘청이며 당장이라도 바닥으로 쏟아질 듯 흔들렸다.

이 바보 같은게! 멍청한 년! 눈치가 하나 없는 게 하는 짓마다 어쩌면 저렇게 지 아빠를 빼닮았는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 엄마 주변을 훑었다. 제발, 엄마 옆에 먼지털이개가 있기를. 그건 별로 아프지 않았고 오히려 폭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행운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부분은 플라스틱 구두주걱이나 딱딱한 나무 손잡이가 달린 빗자루였고, 운이 없으면 쇠로 된 구두 주걱에 맞기도 했다. 쇠와 뼈가 부딪칠 때 나는 소리는 차갑다 못해 소름 끼칠 정도로 날카로운 파열음이었다. 무언가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질까 봐 두려웠지만, 단 한 번도 뼈가 부러진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그 모든 폭력이 타박상으로만 남았고 그 이상은 아니었으니까. 엄마는 여자에게 얼굴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내 얼굴만은 때리지 않았다. 만약 사랑하지 않았다면 얼굴을 망가뜨리거나 몸 어딘가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겼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동네 아주머니들이 내 옷을 들춰보며 수군거렸다.

애 좀 봐요. 등이 온통 시커먼 멍투성이예요. 허구헌 날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가 심각한 얼굴로 내 등을 바라보았다. 당시 여섯 살이었던 나는 아주머니들이 하는 말이 정당한 분노라는 것을 몰랐다. 다만, 우리 엄마 욕을 한다고만 생각했고 어렴풋이 엄마가 때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고, 뭔가 문제가 되는 일이구나라는 걸 느꼈을 뿐이다. 그럼에도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믿음은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음 한가운데 북극성처럼 떠 있어, 언제나 같은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나를 지탱해 주었다. 어린 아이에게 세상은 곧 부모다. 그 부모가 나를 미워한다는 건, 세상이 나를 부정한다는 말과 같았다. 그래서 였을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그 믿음만은 놓을 수 없었다.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들 앞에서 가끔 동생과 나를 비교하곤 했다.

서율이는 눈치가 빨라서 내가 무슨 말만 하면 금방 알아채요. 그런데 지연이는 눈치가 없어서 답답해요.”

서율이는 내가 때리면 막 도망다녀서 웃겨서 못 때리겠어요. 그런데 지연이는 미련 곰탱이처럼 가만히 맞고만 있으니까, 더 화가 나서 오히려 더 때리게 돼요.”

 

서율이처럼 되면 나도 사랑받을 수 있을까. 눈치가 빨라지면 다정하게 봐줄까. 때릴 때 도망치면 웃겨서 멈출까. 하지만 엄마가 무언가를 시킬 때마다 머릿속은 하얘졌고, 손을 들기만 해도 몸 안 어딘가가 툭 하고 잠겨버린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엄마의 말처럼, 내가 맞는 건 내가 멍청하고 동생만큼 빠릿빠릿하지 못하고 느려 터려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일 거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부족해서 맞는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심부름을 잘못했던 그 날, 엄마는 평소와는 달랐다. 빗자루도, 구두주걱도 들지 않았다. 대신 나를 움켜잡았다. 마치 제사장이 신에게 제물을 바치듯, 가슴과 엉덩이를 잡아 네발 달린 짐승처럼 번쩍 들어 올렸다. 기껏해야 두어 미터 남짓한 높이였을 텐데 바닥은 까마득하게 멀어 보였다. 내던져지면 죽거나, 어딘가 크게 망가질 것만 같았다. 공포에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마음속으로 쉴새없이 되뇌였다.

엄마는 한 번도 크게 다치게 한 적이 없어. 맨날 보이지 않는 곳만 때리잖아. 나를 생각해서 그런거야. 여기는 너무 높아. 위험해. 그래도 엄마는 날 사랑해. 그러니까 던지지 않을거야. 엄마는 날

 

엄마는 현관 바닥으로 나를 힘껏 내동댕이쳤다. 순간 정신을 잃었는지, 눈을 떴을 때는 차가운 타일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분명 아플 거라고 생각했다. 살점이 찢기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긴장으로 돌처럼 굳어 있던 몸이 툭, 끊어진 실처럼 힘없이 풀려 늘어졌다. 팔은 내 것이 아닌 듯했고 다리는 남의 다리 같았다. 정작 아팠던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온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빛도 소리도 없는 어둠만이 가득한 곳에 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아무도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나를 보지 못하는 그곳에서 온몸이 눈물로 빚어진 듯, 눈물만 소리없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엄마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엄마는 나를 난폭하게 화장실로 질질 끌고 가, 물이 가득 찬 욕조에 그대로 밀어 넣었다. 도망치지 못하게 머리를 눌러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필사적으로 손을 위로 뻗어 바둥거렸다. 머리가 물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잠겼다. 코로 물이 들이치고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다. 숨을 고를 새도, 정신을 붙잡을 틈도 없었다.

엄마, 살려 주세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엄마의 팔을 붙잡았다. 얼마나 많이 그 말을 했는지, 셀 수 없었다. 그러다 엄마의 손이 멈췄다. 한순간, 정신이 든 듯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면 엄마는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당황한 기색이 잠깐 스쳤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 손을 떼어내고,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욕조 안에 반쯤 물에 잠긴 채로 남겨졌다. 울음이 꺼억꺼억, 물과 함께 토해졌다. 물이었는지, 눈물이었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소리도, 숨도, 감정도 뒤엉켜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단 하나만이 또렷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죽이려 했다. 엄마는 날사랑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나도 동생처럼, 엄마에게 다정한 애칭으로 불리고 싶었다. 엄마가 동생 이름 서율에서 끝 글자만 따서 이라고 부를 때, 그 소리는 얼마나 달콤했던지. ‘아들이라고 부를 때는 혈육에 대한 애틋함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엄마는 한 번도 나를 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내 이름에서 끝 글자만 따서 불러준 적도 없었다.

 

어느 날, 동생이 고기 반찬을 혼자 다 먹으려고 고기에 침을 퉤퉤 뱉었다. 어이가 없어 엄마에게 뭐라고 좀 해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런데 엄마는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율이는 편식이 심해서 잘 안 먹잖니. 고기라도 잘 먹어야지. 너는 아무거나 잘 먹잖아. 고기 안 먹어도 되잖아.”

 

엄마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아무거나 잘 먹으려고 애썼다. 생양파는 맵고 아렸고, 쉰내 나는 오래된 나물은 정말 싫었지만 꾹 참았다. 나도 갓 구운 소고기 정말 좋아하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밥만 꾸역꾸역 삼켰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거였다. 동생이 학교를 빼먹고 오락실에 가도, 엄마 지갑에서 몰래 돈을 꺼내 친구와 과자를 사 먹어도 내가 말끔하게 집안을 치우고 시험마다 백 점을 받고 엄마 생일날 정성껏 노래하고 춤을 춰도 엄마의 눈길은 늘 동생에게만 향했다. 알고 있었다. 아무리 해도 소용없다는 걸.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사랑이, 너무 고팠다.

 

성당에서 신부님이 그러셨다. 신은 세상 모든 사람을 보살필 수 없어 엄마를 보내셨다고. 책 속에서도 엄마는 언제나 다정하고 따뜻했다. 무엇이든 아낌없이 내어주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존재로 그려졌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이런 장면도 있었다. 엄마를 죽여 심장을 꺼내 들고 가던 아들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자, 그 심장이 피를 뚝뚝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가, 괜찮니?”

자식이 어떤 모습이든, 어떤 짓을 했든, 조건없이 사랑을 퍼붓는 엄마. 그런 사랑을 나도 한번 받아보고 싶었다. 나에게 생명을 준 엄마조차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존재가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 그 절망 속에서, 나는 간절히 바랐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안아 줄 누군가를.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읽기에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자녀는 이렇게 키워라같은 책을 꺼내들고, 거기에 쓰인 문장을 한 줄 한 줄 정독했다.

자녀가 속상해 할 때는 이렇게 말해 주세요.”

들어 본 적 없는 말들이 가득했다. 낯설고 그리운 말들이. 나는 듣고 싶은 그 말들을 마음 속에 새겼다. 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해 주지 않으니 나라도 해야 했다. 나에게 들려주기 위해.

상처받은 날이면, 내 안의 엄마가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지연아, 지금은 힘들지만 괜찮아질 거야. 우리 지연이는 잘할 수 있을 거야.’

지연이 감정을 가라앉혀 볼까? 숨을 천천히 쉬어 봐. 그래, 잘했어.’

상상 속의 엄마는 늘 현명했고 따뜻했다. 그 말들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둘만의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슬픔과 좌절로 가득하던 세상은 잠시 사라지고 기대서 쉴 수 있는 고요한 안식처가 열렸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사랑이 그리운 아이들, 울며 기댈 곳을 찾는 아이들을 포근히 감싸주는 그런 존재. 나처럼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있을 그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따뜻하게 안아 주고 싶었다. 선생님이 되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운명처럼, ‘선생님이라는 꿈이 내게 다가왔다. 내가 늘 꿈꾸던 엄마 같은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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