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엄마를 보면 혼란스러웠다. 엄마는 동네 혼자 사는 할머니를 방문해 반찬을 챙겨주었고 사람들이 업신여기는 사람들에게 더 공손히 대했다. 간호사로 잠깐 일할 때는
징그럽게 생겨 다른 간호사들이 꺼리던 아이를 유난히 예뻐해 그 아이는 엄마만 찾았다. 약자에게 유독 마음이 가는 눈물 많은 엄마가 왜 나에게는 모진 말로 상처를 주고 허구헌날 별것도 아닌 이유로 때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는 언니가 최면 상담을 소개해줬다. 무의식을 통해 풀리지 않은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늘 궁금했다. 엄마가 왜 날 죽이려 했는지. 바닥으로 날 내던졌을 때, 숨을 쉬지 못하도록 욕조 속 물에 내 머리를 눌렀을 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죽이고 싶을 만큼 나의 어떤 점이 그렇게 싫었을까.
일 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무의식연구소의 석정훈 선생님을 만났다. 최면 상담실은 생각보다 작았다. 문을 닫자 바깥의 소리가 한 겹 접히듯 멀어졌다. 한쪽에 갈색 가죽 의자가 놓여 있었다. 솜이 꽉 찬 듯 몽실몽실 부풀어 있었고 여기저기 늘어진 주름은 오래 앉아 있던 사람들의 체온을 기억하는 자리처럼 보였다. 오래된 것들만이 가질 수 있는 포근함과 평온함이 그 의자에 묻어 있었다. 벽 선반에는 날개 달린 아기 천사 조형물이 작게 놓여 있었다. 구릿빛이 얇게 스민 표면은 반짝이지 않았지만 오래 제 자리를 지켜온 물건처럼 단정했다. 의자에 몸을 기대고 회색 벨벳 담요를 다리 위로 덮었다. 살에 닿자마자 부드러운 결이 조용히 미끄러지듯 내려앉았다. 선생님은 하얀 곰 인형을 건넸다. 손때가 깊게 스며 천결이 비늘처럼 일어난 낡은 인형이었다. 꼬질꼬질해 보여 선뜻 손이 가지 않았지만 거절하면 어색해질 것 같아 조심스레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최면을 처음 하시는 분들은 대개 눈으로 뭔가를 찾으세요.”
먼지가 가라앉는 듯한 잔잔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최면은 보는 일이 아닙니다. 마음이 먼저 움직여요. 이미지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감정이 흘러가는 방향을 따라가 보세요.”
그 말에 이끌려 기억은 서서히 오래된 어둠 속으로 잠겨들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깜깜한 방안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엄마가 ‘말을 안 듣는다’며 밀어 넣었던 창고였다. 잡동사니가 천장 가까이까지 쌓여 있고,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던 칠흙의 공간. 알 수 없는 검은 형체가 툭 튀어나와 나를 확 잡아채갈 것 같아 미친 듯 문을 두드리며 ‘엄마, 엄마, 엄마.’만을 끝없이 외치던 작은 목소리가 귓가에 되살아났다. 나도 모르게 오리 인형을 꽉 쥐었다. 적당히 부드러운 솜이 손바닥에 파고들며 세상에는 이런 포근함도 있다는 사실을 가만히 일깨웠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나는 여전히 거기에 홀로 있었다. 애처로워 그 아이를 꼭 끌어 안았다. 조그맣고 갸냘픈 몸이 맥없이 쓰러지듯 내게 기대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멀리서 잔물결처럼 밀려왔다.
“어린 나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 주세요.”
햇살이 가득한 밖에서 깡충깡충 뛰며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어린 나의 손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세상은 환하고 아름다워. 이젠 여기서 나오자.”
그러나 어린 나는 힘없이 손을 뿌리쳤다.
“여기가 좋아.”
아무도 없이 홀로, 두려움 속에서 줄곧 살아왔던 아이는 어둠에 익숙해져 그 세상만이 전부인 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이 슬퍼 가슴이 아렸다. 억지로라도 끌고 나오지 않으면 평생 그 속에서 살 것 같아 강제로 아이를 일으켜 세우려던 순간, 선생님의 목소리가 나를 멈춰 세웠다.
“어린 나가 편하다면 굳이 밝은 곳으로 데려갈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이 아이를 어둠 속에 홀로 두지 않는 겁니다. 그 약속해 주실 수 있죠? 좋아요. 바로 그 약속과 그 마음으로 지금 이 아이를 꼭 안아 주세요. 이 아이는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이 곁에 있으니까요. 이제, 이 아이를 여기에 가둔 젊은 엄마를 만나러 가봅시다.”
엄마가 나를 욕조에 밀어 넣고 머리를 물속으로 사정없이 누르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엄마는 화가 나 있고 짜증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온몸의 세포마다 공격하고 싶은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 어린 나는 버둥거리며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면서도 원망하기는커녕, 엄마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슬퍼하며 여전히 엄마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 어린 내가 한없이 불쌍하고, 동시에 병신처럼 느껴졌다. 선생님은 그 아이를 안고 위로하라고 했지만, 도무지 그런 마음이 일지 않았다. 아무런 감정 없이, 오열하는 어린 나를 그저 끌어안고 있었다. 화조차 내지 않고 사랑을 구걸하는 모습이 한없이 무력하고 비굴하게 느껴져 한심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때 선생님의 목소리가 나를 이끌었다.
“자, 이젠 젊은 엄마에게 어린 나를 위해 하고 싶은 말을 해 보세요.”
엄마가 어린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도록 엄마의 팔을 붙들며 울면서 소리쳤다.
“정신 좀 차려! 애를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해.”
엄마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분노를 멈출 수가 없어. 그냥… 사는 게 너무 힘들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시 멈칫했다. 엄마도 힘들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사는 게 힘들어도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엄마는 화를 멈출 수도 있었고 나에게 다정할 수도 있었다. 사는 게 고달팠겠지만 매 순간마다 엄마는 다른 결정을 할 수 있었다. 그 선택의 책임을 외면한 채, 모든 것을 고단함 하나로 덮어 버릴 수는 없다.
선생님의 차분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엄마에게 어린 지연이는 어떤 딸인가요?”
듣고 싶지 않았다. 설령 현실이 아니라 해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었지만 절대 잊혀지지 않은 단어들이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며 마음을 할퀼 듯 다가왔다. ‘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년’. ‘느려터진 년’ 시간이 흘러도 그 말들은 조금도 바스라지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아 돌처럼 굳히며 되뇌었다. 어쨌든 이 순간은 지나갈 것이다. 잠시만 버티면 된다.
“안쓰러운 딸이요.”
뜻밖의 말에 순간 심장이 움찔했다. 엄마의 서러운 울음 소리가 밖으로 터져나왔다.
“힘든 걸 애한테 다 쏟아낸 게 너무 미안해. 그런데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애가 너무 불쌍해. 다른 건 다 걱정, 걱정인데… 애만 나한테 걱정을 안 끼쳐. 화내도 괜찮고 애는 건강하니까 때려도 괜찮고 애가 다 받아주잖아.”
믿기지 않았다. 엄마가 삶을 증오하게 만든 근원이 나인 줄 알았는데 걱정 가득한 고단한 삶 속에 유일하게 고통이 아니었던 존재가 나였다니.
“내가 그렇게 키웠는데 잘 자라줘서 너무 고마워. 네가 없었으면… 난 너무 힘들어서 아마 살아 있지 못했을 거야.”
“아마 살아 있지 못했을 거야” 그 말이 서라운드 스피커처럼 사방에서 울려와, 나를 통째로 흔들었다. 발밑이 꺼지며 끝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했다. 한 번도 엄마가 없는 세상을 그려 본 적이 없었다. 오래도록 엄마를 원망했다. 어린 날 엄마를 사랑했던 기억은 나란 존재는 아무리 노력해도 사랑을 얻을 수 없다는 쓰라린 굴욕과 패배의 낙인에 불과했다. 엄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며 살아왔고 벗어나기만 하면 마냥 홀가분하고 기쁠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엄마가 사라진 자리는…
텅 빈 암흑이었다.
엄마 때문에 어둠 속에 홀로 갇혀 있다고 믿었지만, 정작 엄마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제야 알았다. 미움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못한 애정의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음을. 증오의 밑바닥에서 발견한 것은 사랑이었다. 곱고 보드라운 사랑이 아니었다. 원망과 고통으로 얼룩져 피 흘리면서도 끊어낼 수 없는, 영혼의 뿌리에 들러붙어 존재 자체가 되어버린 끈적끈적한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분명, 사랑이었다. 나는 엄마와 강력하게 이어져 있었다. 사랑이 없었다면 한 존재를 향해 이렇게 치열하게 마음을 쏟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엄마도 내게 그러했음을, 이제야 인정할 수 있었다. 내가 알던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는 것 같았다. 롤러코스터에 던져진 듯 머리가 얼얼하고 토할 것 같이 울렁거렸다.
“마지막으로 젊은 엄마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해 주세요.”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엄마가 때리고 욕하며, 심지어 죽이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엄마의 뜻대로 하지 않으면 사납게 윽박지르던 엄마 때문에 오랫동안 내 목소리를 내면 두려웠다. 엄마가 늘 이기적이고 멍청하게 여기던 내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봐 전정긍긍하며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했다. 때로는 심한 긴장감에 침조차 의식적으로 삼켜야 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엄마가 남긴 상처들은 내 삶 곳곳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나는 그 막강한 영향력에 분노하며 오랫동안 원망했다. 벗어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고 그 무력감에 자책하기도 했다. 그래서 엄마를 무시했다. 감정 조절조자 못하는 형편없는 사람이라 여겼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면 내가 하찮은 사람이라는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진실이 되어 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네가 있어서 살았다”는 엄마의 고백 앞에서 똘똘 뭉쳐 있던 원망과 분노, 자책과 한숨이 한순간 따스하게 녹아내렸다. 엄마가 없는 세상은 슬픔, 그 자체였다.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엄마, 엄마가 살았으면 그걸로 됐어요.”
그 말을 하는 순간, 나는 불쌍하고 한심해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무력한 존재가 아니었다. 상처 입힌 사람조차 사랑으로 바라보는 큰 존재였다. 그리고 그 사랑이 엄마를 살렸다.
최면 상담이 끝난 뒤 의문이 남았다. 최면 속 엄마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내 무의식이 만들어 낸 형상이었다. 그렇다면 그 대답은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 결국 내 생각의 반영일 뿐 아닐까. 하지만 단순히 내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내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낯선 대답이 흘러나올 수 있었을까. 선생님은 차분히 설명해 주셨다.
“의식은 한가지 생각에만 사로잡혀 자신의 생각에 맞는 것만 보고 들어요. 그렇지만 무의식은 그렇지 않아요. 무의식은 모든 것을 받아 들여요. 그래서 지연님이 판단하는 것보다 현실을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죠. 최면 속 어머님이 하신 말씀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예요. 무의식이 지연님이 흘려보냈던 어머님의 모든 말씀과 행동을 토대로 내놓은 대답이예요. 비슷한 말을 하신 적이 정말 없으신가요?”
엄마가 하신 말씀들이 떠올랐다.
“네 동생은 하도 약해 까딱하면 숨이 넘어갈까 걱정했는데 넌 튼튼했지.”
“넌 거저 키웠지. 학원 하나 안 보냈는데도 대학교에 잘 들어가고 장학금도 받아서 돈 들어갈 일도 없었지.”
“너 혼자 뚝딱뚝딱 잘하길래 결혼 준비가 세상 쉬운 줄 알았지. 근데 네 동생 결혼 준비를 내가 하다 보니까 너무 힘들더라.”
“내가 살림을 가르친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하니.”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흘려들었다. 엄마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미안한 마음은 전해졌지만 나를 향해 말하는 사랑에는 눈과 귀를 닫았다. 다시는 상처받기 싫어 마음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지금의 내가 필요했다. 엄마의 폭력에 분노하며, 그것이 내 잘못이 아님을 분명히 말해줄 누군가. 동시에 지금의 나에게도 어린 내가 필요했다. 깊이 사랑하고 깊이 믿었던 어린 나. 그 아이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무한한 신뢰와 사랑으로 곁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었다. 신은 모든 이를 다 돌볼 수 없어 엄마를 보냈다고 한다. 어쩌면 그 문장에는 빠진 한 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세상에 내려와 엄마의 영혼에 숨을 불어넣는 존재라는, 그 마지막 문장.
눈을 감는다. 어린 시절의 나를 찾으러 간다. 먼지 냄새가 가득한, 빛 한 줄 새어 들어오지 않는 작은 방. 오랫동안 그 아이를 부끄러워했다. 너무 하찮고, 너무 미약해서 감추고 지워버리고 싶었다. 억지로 밝은 곳으로 끌어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말을 걸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 아이와 눈을 맞추고 묻는다.
“지금 뭐가 하고 싶어?”
어린 나는 쉬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아이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폭신한 침대로 천천히 걸어간다. 나란히 눕고 아이의 머리칼을 다정하게 쓸어 넘긴다. 아이는 눈을 감고 입가에 잔잔한 웃음을 띠며 속삭인다.
“한숨 푹 자고 싶었어. 이렇게… 누군가 내 옆에 있는 채로.”
그 말을 들으며 나도 눈을 감는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나도 오래전부터 쉬고 싶었다는 것을.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의 곁에서 조용히 쉰다. 언젠가 햇살이 스며드는 오후 산들바람이 목덜미를 스치는 날, 함께 소풍 가는 날이 오겠지. 하지만 그날이 꼭 오지 않아도 괜찮다. 이제는 우리가 함께 있으니까 사랑하고 싶을 때는 사랑하고 지키고 싶을 때는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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