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받은 아이가 선생님이 되면 좋을 줄 알았다. 몸과 마음에 생채기가 난 아이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어떤 말이 아이들을 움츠러들게 하고, 어떤 행동이 마음에 깊은 구멍을 남기지는 뼈저리게 알기에 더 조심스럽게, 더 따뜻하게, 더 존중하며 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어린 시절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사랑을 아이들에게 기꺼이 쏟아붓고, 그 사랑으로 아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성격 좋고 공부 잘하는, 그야말로 흠잡을 데 없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마음이 향할 때, 나는 오히려 그 반대편 아이들에게 눈길이 갔다.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그림자처럼 앉아 있던 아이들이 내게는 유난히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래서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눈을 맞추고, 조심스레 마음을 건넸다.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해 시들어가던 아이들은 고개를 들었고, 조금씩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바짝 마른 나무가 빗물을 머금고 다시 초록빛을 띠며 싱그럽게 살아나는 것처럼 보여 가슴이 벅찼다.
선생님들이 애를 먹는 개구쟁이 아이들도 참 좋았다. 넘치는 생명력으로 반짝이는 그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동경 때문인지 왠지 마음이 끌렸다. 어린 시절의 나는 늘 우울했고 그 시절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수업 시간 내내 집중하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떠드는 그 아이들은 마냥 사랑스러웠다. 분출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꾸중만 듣던 아이들은 내 칭찬 앞에서 눈을 반짝였고, 그 힘을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쓰기 시작했다.
늘 칭찬받던 아이들은 그걸 당연하게 여겼지만, 사랑에 목마른 아이들은 내 작은 말 한마디, 사소한 친절에도 깊이 감동했고 오래도록 간직했다. 그런 아이들은 아주 작은 온기에도 눈부시게 자라났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 꿈꿨던 ‘엄마 같은 선생님’이 된 것 같아 행복했고 선생님이 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학대받은 아이에게 폭력은 마치 공기처럼 스며들어 세포 구석구석에 새겨진다는 것을. 그 폭력은 어느새 내가 되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혼냈던 어느 날, 4학년 장현이는 씩씩거리며 책가방을 챙기더니 집에 가겠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순간,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야만성이 고개를 들었다. 책가방을 거칠게 낚아채 바닥으로 내던지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아이들이 친구를 때리거나 무례하게 굴 때마다, 엄마가 내게 했던 말과 행동들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는 단호하면서도 침착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수없이 책에서 읽었고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도 했었건만. 제정신을 잃고 엄마처럼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장현이는 공포에 질려 어깨를 움츠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엄마 같은 사람이 결코 되고 싶지 않았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곧장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그 뒤로는 언제나 친절하게 대하려 애썼다. 하지만 말을 걸 때마다 장현이는 몸을 뒤로 뺐고,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음이 아팠지만 되돌릴 수는 없었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엄마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나를 참담하게 했다. 폭력 속에서 자란 나는, 애초에 선생님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을까.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다’는 말처럼, 부모님의 사랑 속에서 자란 이들만이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걸까. 폭력을 보고 자라, 그것밖에 배운지 못한 내가 줄 수 있는 건 결국 상처뿐일까. 그렇다면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을 그만두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을, 늘 아이들을 위해 진심을 다하던 선배에게 털어놓았다. 선배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선생님을 해야 해.”
“왜요? 저는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언제 또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지 몰라서 무서워요. 아무리 다짐하고 또 다짐해도……. 저도 모르게 그때처럼 행동해요.”
선배는 한동안 나를 바라봤다. 깊고 고요한 눈빛이었다. 그 시선에 마음이 조금 가라 앉았다.
“정말 그만둬야 하는 사람은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아. 넌 끊임없이 아이들을 생각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잖아. 그런 사람이 선생님을 해야 해.”
지금이라면, 그 말을 들으며 아마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을 것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 ‘아, 그렇구나.’하고 공감했을 것이다. 선생님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아이들을 위해 매일 더 나은 나를 선택해 가는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그저 존경하는 선배가 ‘괜찮다’고 해줬다는 사실에, 조금 안도했을 뿐이었다. 그 말을 온전히 믿지는 못했다. 어쨌든 내가 저지른 행동은 아이들에게 상처로 남았을 테니까.

옆 반 선생님은 나처럼 신규였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척 봐도 부모님께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났고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모두 그 선생님을 좋아했다. 스승의 날, 우리 반 아이 하나는 나 대신 그 선생님에게 편지를 썼다.
‘선생님은 너무 예쁘고 상냥하고 친절해서 좋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이는 어쩌면 내 관심을 끌고 싶었던 걸지도, 순수하게 옆 반 선생님을 좋아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나를 싫어해서 그러는 것처럼 느껴졌다. 괜히 주눅이 들어 그 아이에게 말조차 제대로 걸지 못했다. 그 시절 나는 자존감이 바닥이었고 그 선생님과 나를 계속해서 비교했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다정하게 말하고 행동하며 아이들과 사랑을 주고받는 그 선생님을 보며 하나부터 열까지 노력해도 아이들과 가까워지는게 쉽지 않은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점점 확신하게 됐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 선생님을 해야 하는 거라고. 나는… 아니라고.
그렇게 쌓인 마음을 옆 반 선생님에게 털어놓았을 때, 선생님은 뜻밖의 대답을 했다.
“어릴 때 외할머니에게 사랑받고 자란 건 맞아요. 항상 최고라고 해주셨고요. 그런데 누가 저를 싫어하면 견디질 못해요. 억지로 비위를 맞추고, 무리하게 관계를 유지하려 들죠. 그게 아이들에게 꼭 좋은 영향을 주는지는 모르겠어요.”
그 말을 들으며 처음 알았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도 완전하지 않다는 걸. 오히려 그 사랑이 새로운 어려움이 되기도 한다는 걸. 그때부터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선생님만 그런 게 아닐까?’, ‘사랑받고 자란 사람은 그래도 다르지 않을까?’라는 믿음은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러다 명상센터에서 차갑고 완고한 할머니를 만났다. 그분은 내가 우진이를 정성껏 돌보는 모습을 늘 못마땅하게 바라보셨다. 어느 날, 비가 갑자기 억수같이 쏟아져 우진이와 내가 흠뻑 젖어 들어섰을 때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겨우 세 살배기 아이가 비에 젖어 추위에 떨며 앙앙 우는데도, 할머니는 명상센터는 조용해야 한다며 문 앞을 막아서더니 나가라고 밀어냈다. 결국 나는 폭우 속에서 유모차를 끌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그 태도를 할머니의 성장 환경 탓으로 돌렸다. 원리원칙만을 강요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나셔서 배운 것도 그뿐이었으리라.
어느 날, 그분이 답답하다는 듯 말씀하셨다.
“애를 그렇게 물러 터지게 키우면 안 돼.”
나는 조심스레 대답했다.
“어릴 때 엄마한테 자주 혼났어요. 그래서 제 아이한테 제가 받지 못한 사랑을 주고 싶어요.”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시며 옛이야기를 꺼내셨다.
“나는 막내딸이라 온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자랐어.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서 세상이 내 뜻대로만 굴러가는 줄 알았어. 그러다 사회에 나가 미움도 많이 받고 정말 힘들었어.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만큼은 나처럼 힘들게 살지 말라고 엄격하게 키웠어. 그런데 아이가 크고 나서 왜 그렇게 모질게 대했냐고 원망하더라. 내 마음은 몰라주고.”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 반드시 사랑을 잘 줄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부족한 사랑으로 외로웠던 기억 때문에 아들에게 사랑을 쏟아부었고, 그분은 넘쳤던 사랑으로 고통을 겪었던 기억 때문에 딸에게 오히려 엄격했다. 이유는 달랐지만, 결국 우리는 ‘사랑’ 앞에서 서툴렀다.
우진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눈도 마주치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제발 나한테 관심 좀 두지 마.”
나는 관심이 곧 사랑이고 사랑만 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아이는 버거워했다. 사랑의 적당한 온도와 거리를 찾는 일, 그것은 할머니에게도, 나에게도 인생이 내린 숙제였다.
학대받은 아이가 선생님이 되는 건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었다. 하지만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라고 해서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각자의 조건을 안고 살아가고, 그것은 약점이 되기도 하고 든든한 자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는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라는 이유를 핑계로 삼지 않기로 했다. ‘학대를 받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아쉬움도 내려 놓기로 했다. 폭력 속에서 자랐든, 사랑 속에서 컸든, 우리가 배워야 할 삶의 진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명상 강사님은 무리한 일정에 지쳐 헉헉 대는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다 하려고 하지 마세요. 지금 중요한 것은 명상을 통해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쓸데없는 것을 줄이는 거예요.”
하지만 그 말을 흘려듣고 여전히 욕심껏 모든 일을 해나갔다. 결국 몸이 상했고, 꼭 가야 한다고 마음먹었던 명상 캠프마저 취소해야 했다. 속상함에 자책하며 털어놓았다.
“강사님 말씀하신 대로 했어야 했는데, 무리하다가 몸이 이 지경이 됐어요. 그래서 정말 가고 싶었던 명상 캠프도 못 가게 됐어요. 왜 말씀을 안 들었을까요?”
강사님은 경쾌하게 웃으며 시원하게 말씀하셨다.
“잘했어요.”
“네?”
“직접 해봐야 알지요. 이번 기회에 확실히 깨달았잖아요.”
강사님은 내가 낙심할 때마다 늘 다정한 웃음과 환한 말로 내 어두운 마음을 밝혀 주셨다.
“실패해도 괜찮아요. 배웠잖아요.”
어릴 적 엄마에게 그토록 받고 싶었던 따뜻한 사랑과 무한한 격려를, 강사님이 내게 건네 주신다. 교실 청소를 하던 여사님은 오래도록 콜록거리는 내가 걱정된다며 직접 달인 도라지청을 손에 쥐여 주신다. 잇몸이 아파 밥을 잘 못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한밤중에 송진 가루를 들고 찾아와, 내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산책하다 들른 거야”라며 웃는다. 학교 밖에서 우연히 나를 본 우리 반 아이는 편의점에서 뛰쳐나와 계단을 세 칸씩 껑충 오르며 달려온다. 뒤이어 다른 아이들도 메로나를 손에 쥔 채 뛰쳐나와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두 팔을 벌린다. 손끝에서 채 먹지 못한 아이스크림이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랑과 격려는 일상 곳곳에 스며 있었다. 그 순간들을 하나하나 기억해 두었다가 아이들에게 되돌려 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도 숨 쉬듯 사랑하고, 자연스럽게 위로할 수 있게 되리라.
학대받은 아이가 선생님이 되면? 특별할 것 없다. 누구나 저마다의 아픔과 시련,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살아가듯, 그것 또한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기꺼이 변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부족한 것은 세상에서 배우고 찾아내면 된다. 엄마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해 숨 쉬듯 사랑을 나누지 못하다면 내게 주었던 사랑을 잘 기억했다가 아이들에게 돌려주면 된다. 숨 쉬듯 사랑하는 사람 곁에 머물며 조금씩 따라 해봐도 된다. 잘 안 되어도 괜찮다.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그 모든 시도가 아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발걸음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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