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인 아들의 몸 반절은 딱딱한 나무토막 같았다. 왼쪽 팔은 곧게 뻗어 있었고 일정한 속도로 빠르게 올라갔다 내려왔다. 얼굴은 굳어 있었고, 반쯤 열린 눈은 천장에 그대로 걸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움직이는 태엽 인형을 보는 듯 했다. 그 모습이 기괴하고, 무엇보다 그 아이가 우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꿈을 꾸는 것 같았다. 119에 전화를 걸어 숨을 고르기도 전에 말을 쏟아냈다. 구급대원은 경련이 얼마나 지속됐는지 물었다.
“오 분은 넘은 것 같아요.”
짧은 대답이 끝나자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긴박해졌다. 오 분이 지나면 많이 위험하다고 했다.
“제가 너무 놀라서 오 분이 넘었다고 말한 건 아닐까요? 실제로는 오 분이 안 됐을지도 몰라요”
울음인지 말인지 모를 소리가, 헐떡이는 숨 사이로 뚝뚝 끊겨 나왔다. 초침은 이미 여러 바퀴를 돌았건만, 벽시계는 여전히 초 단위를 또각또각 끊으며 숨 가쁘게 앞으로 내달렸다. 오 분은.
아까부터 이미 넘어있었다.
경련이 제발 그치길 바라며 우진이를 바라보았다. 몸은 계속 거칠게 뒤틀렸고 그 몇 분은 끝이 나지 않는 시간처럼 늘어졌다. 십여 분쯤 지났을까. 우진이는 갑자기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죽은 건가. 계속 터져 나오던 울음이 한순간에 멎었다. 방 안의 소리가 모두 꺼지고 우진이와 나만 남은 듯 고요했다. 숨을 죽인 채 우진이의 코에 귀를 바짝 댔다. 미세한 숨결이 닿았다. 안도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날, 우진이는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향했다. 병명은 ‘뇌전증’이었다. 경련을 일으키고, 의식을 잃는 발작이 되풀이하여 나타나는 병으로, 예전에는 간질로 불렸다. 가족이나 친척 중 누구에게도 없던 병이라 낯설었고, 설명을 듣고도 쉽게 믿기지 않았다. 상태가 심각해 병원에 일주일가량 입원해야 했고 앞으로도 계속 약을 복용해야 했다.
퇴원하고 한 달 뒤, 우진이는 영어 단어를 외우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나 바보가 된 것 같아. 영어 단어가 아무리 외워도 외워지지를 않아. 한 시간 반이나 외웠는데 하나밖에 못 외웠어.”
우진이는 아이큐 검사에서 상위 1퍼센트 판정을 받았던 아이였다. 놀라운 속도로 빨리 배우고 깊이 이해했다. 그런데 한 시간 반 동안 영어 단어를 한 개밖에 못 외웠다는 사실에 심장이 쿵 떨어졌다. 뇌전증 발작이 오래 이어지면 뇌가 과도한 전기 자극을 받아 손상 될 수 있다고 한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이게 다 내 탓이라는 죄책감이 물밀듯이 나를 치고 들어 왔다.
“괜찮아. 영어 단어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못 외워도 돼.”
평온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려 애쓰며 우진이를 끌어안아 토닥였다. 내 체온의 따뜻함이 우진이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경련이 일어나기 네 달 전부터 우진이는 눈에 띄게 생기를 잃어갔다. 왜 그러냐고 묻자, 짝이 하루종일 울어서 괴롭다고 했다. 며칠 전, 연구실에서 교과 선생님들이 그 짝 이야기를 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조그마한 일에도 큰 소리로 계속 울어서 수업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했다.
“울음소리가 하도 커서 확성기를 단 것 같아요.”
우진이는 아기 때부터 소리에 유난히 예민한 아이였다. 문 여닫는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 숨이 넘어가도록 울곤 했다. 그런 아이에게 바로 옆자리에서 확성기 같은 울음이 끊임없이 이어졌으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짝을 바꿔 달라고 해볼까”하고 말하자, 우진이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 이주만 더 참으면 될 것 같아. 한 달 지나면 짝 바꾸잖아. 그때는 그 애랑 다시 짝이 되지는 않겠지.”
우진이는 꿋꿋이 한 달을 버텼다. 사월이 되어 짝이 바뀌자,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유월이 되자, 눈 밑에 다시 그늘이 짙게 깔렸다. 그 친구와 짝은 아니지만, 같은 모둠이 되었다고 했다.
“선생님께 말씀드려 볼까”라는 말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예전처럼 쉽게 나오지 않았다. 지난 3월 상담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했던 말이 마음 한 켠에서 걸림돌처럼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지적하셨고, 교사인 내 직업을 두고는 “선생님들은 바빠서 정작 자기 아이는 잘 챙기지 못하는 게 문제야.”라고 하셨다. 우진이가 야구 규칙을 꼼꼼히 따지는 걸 두고는 “대충 넘어가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따지냐”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셨다. 친구가 뒤에서 밀친 일, 고작 그런 일로 이른다며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않으셨다.
그날 저녁, 조심스레 우진이에게 물었다.
“친구가 뒤에서 밀쳤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니?”
우진이는 말없이 소매를 걷어 올렸다. 팔 전체에 시커먼 멍이 퍼져 있었다.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팔꿈치 위에서 어깨까지 이어진 자국이 또렷했고 색이 너무 짙어 피가 제대로 돌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며 가슴 한쪽이 툭 하고 내려앉았다. 우진이는 고개를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들이 한꺼번에 밀어서 문에 팔이 끼였어요. 움직일 수 없었어요.”
한참을 망설이다가 다음 날, 담임선생님께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셨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학교 곳곳에서 우진이가 예민하다는 말을 하고 다니신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모둠을 바꿔 달라고 부탁하면 역시나 까탈스럽다며 고개를 젓고 한숨을 쉬실 것 같았다. 아니면, 애를 그렇게 키우면 안 된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다그치실지도 몰랐다. 내 짧은 침묵 속에 우진이는 망설임과 곤란함, 두려움을 눈치채고는 모든 것을체념한 듯이 말했다.
“괜찮아.”
괜찮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진이는 언제나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머리가 찢어져 일곱 바늘을 꿰맬 때조차 “괜찮다”고 말하던 아이였으니까.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우진이의 “괜찮다”는 말 뒤에 숨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은 언제나 두려웠다. 상대가 조금이라도 냉담해지거나 목소리가 날카로워지면 단순한 어려움을 넘어 몸이 먼저 움츠러들었다. 어릴 적, 엄마에게 무언가를 해달라고 말하면,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것”, “못돼쳐먹은 것”이라는 세된 소리가 돌아왔다. 그럴 때마다 화들짝 놀라 입 안에서 맴돌던 말을 황급히 삼켰다.
엄마가 처음으로 점심으로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었던 그 날이 아직도 또렷하다. 먹고 싶은 것을 먹게 돼서가 아니라, 처음으로 내 생각을 물어 봐주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콩콩 뛰었다. 신이 나서 비빔국수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의 얼굴이 순간 벌겋게 달아올랐다.
“왜 하필 비빔국수야?”
화가 잔뜩 섞인 목소리였다. 엄마는 국수를 삶더니 면을 찬물에 거칠게 비볐다.
“엄마가 힘들면 안 먹어도 돼요.”
그 말을 꺼내고 싶었지만, 그러면 더 화를 내실 것 같아 어쩔 줄 모르며 엄마 곁에 서 있었다. 엄마는 세숫대야만 한 양푼에 비빔국수를 가득 담아 식탁 위에 ‘탕’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다 못 먹으면 죽을 줄 알아!”
비빔국수는 거대한 산처럼 보였다. 아무리 봐도 다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엄마한테 혼날까 봐, 소리 없이 울면서 젓가락을 움직였다. 정말 좋아하던 비빔국수였는데, 그날은 마치 고무줄을 씹는 것 같았다. 엄마가 다 못 먹으면 죽인다고 했는데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았다. 그날 이후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일이 더 무서워졌다. “해 주실 수 있으세요?”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짜증 섞인 눈빛과 시뻘겋게 달궈진 듯한 화 난 목소리가 사방에서 덮쳐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참는 쪽을 택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도 하고 싶은 말을 끝내 삼켰다. 담임선생님은 내가 반 회장이니까, 소풍날 먹을 과자를 한 친구를 위해 따로 챙겨 오라고 하셨다. 그 친구는 매일 같은 옷을 입었고 몸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머리는 늘 떡져 있었고 얼굴에는 땟자국이 남아 있었다. 엄마는 새우깡 세 봉지를 주셨다. 친구가 싫어할 것 같아 칸쵸나 빠다 코코넛 같은 과자를 사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괜히 혼이 날까 봐 참았다.
소풍날, 선생님은 내게서 새우깡을 받아 그 친구에게 건넸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얼굴이 화끈거려 어디론가 숨고 싶어졌다. 그날 아침, 엄마는 귀찮다며 밥과 미역줄기 볶음을 도시락통에 담아 주었다. 창피했지만 김밥을 싸달라는 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 엄마는 동네 사람들에게 편하게 살라며, “김밥 대신 밥과 반찬을 싸줬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그게 왜 자랑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김밥을 먹느라 신이 났고 그 친구도 다른 아이가 가져온 김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김밥을 싸오지 않은 아이는 나 혼자뿐이었다. 친구들이 볼까봐 도시락에 고개를 깊숙이 묻고 밥을 꾸역꾸역 삼켰다. 제발 이 시간이 얼른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래도 김밥을 싸달라고 말해 엄마가 화내거나 소리 지르는 일을 겪는 것보다는, 이게 나았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우진이가 얼마나 힘들지 알면서도 외면했다. 그 사이 우진이는 점점 무너져 내렸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고, 어느 날부터인가 얼굴 반쪽이 이상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왼쪽 눈가가 파르르 떨리며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겁이 덜컥 나서 의사인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듣고 동생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병원에 데리고 가. 담임선생님한테 말해서 자리부터 얼른 바꿔.”
부탁해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담임선생님이 가뜩이나 우진이를 좋게 보지 않는데, 이 일로 나와 우진이를 더 안 좋게 생각하면 어쩌나 하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다. 그때 동생이 소리쳤다.
“누나, 정신 차려! 지금 누나 아들 상태 엄청 심각해! 이대로 놔두면 큰일나! 지금은 얼굴이지, 나중에는 온몸으로 퍼진다구!”
응급의학과 의사라서 모든 병을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던 동생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온 뒤,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우진이를 도와줄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어떻게든 용기를 쥐어짜야 했다. 바들바들 떨면서 우진이의 상태를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다. 화를 내시거나 짜증을 내실 줄 알았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 주셨고 안타까워하셨다.
“자리 옮겨 줄게요. 그 친구랑은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히면 되죠.”
담임선생님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거라는 생각은, 결국 내 두려움이 만들어낸 상상이었을 뿐이었다. 가슴 깊숙이 안도감이 스며들었다. 이제 우진이는 점점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그때는 몰랐다. 우진이는 한참 전에 버틸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 버렸고 이미 무너져 버렸다는 것을.
정확히 일주일 뒤, 우진이는 전신 경련을 일으켜 응급실로 실려 갔다. 마음과 몸이 온통 상처투성이라 더 버틸 수 없는 상황에서도 힘들어하는 나를 배려해 괜찮다고 한 장면이 날카로운 화살로 변해 심장을 뚫고 또 뚫었다. 더 일찍 담임선생님한테 자리를 옮겨달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왜 우진이보다 나를 더 생각했을까. 부탁하는 것, 그깟 게 뭐라고 아이를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내버려 두었을까, 왜, 왜, 왜! 그랬을까! 수많은 “했어야 했는데”가 가슴을 후벼팠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증세가 좋아질 수 있도록 병원에 꾸준히 데려가고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부지런히 찾아 헤맸다.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모든 병이 그렇지만 특히, 뇌전증은 스트레스 관리가 절대적이었다. 발병 초기에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증세가 악화되기 쉬웠다. 일단, 우진이가 다니던 모든 학원을 끊었다.
세 달쯤 지나자, 우진이는 영어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곧 “영어 단어 외워야 하는데 어떡하지?”라며 걱정했다. 학원에 상황을 설명하고 단어를 외우지 않아도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우진이가 나아질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한때 나를 짓누르던 거대한 공포는 어느새 ‘그깟 공포’가 되어 있었다. 학원 실장님은 특혜를 줄 수 없다며 야멸차게 거절했다. 상처받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학원의 입장이 이해되었다.
그 학원을 그만두고 다른 곳에 등록했다. 새로 간 학원은 엄격하고 원리 원칙을 중시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우진이가 가고 싶다고 해서 등록은 했지만, 영어 단어를 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실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말을 이어 가다 보니 감정이 울컥 올라와 결국 울음이 터졌다. 속으로 ‘진상도 이런 진상이 없네. 실장님 짜증나시겠다.’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장님은 같이 울어 주셨다.
“당연히 배려해야지요. 아이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당.연.히.
그 단어가 심장을 울렸다. 그런 말을 들을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와 우진이를 도와주는 것은 상대가 특별히 베푸는 호의라고만 여겼는데 그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줄은 몰랐다. 그리고 얼굴조차 본 적 없는 누군가가 나와 우진이를 위해 울어 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정처 없이 떠돌던 불안한 마음이 천천히, 따뜻하게 가라앉았다.
새 담임선생님께 부탁을 드리는 일은 학원에 전화하는 것처럼 쉽지 않았다. 우진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옆자리나 모둠 친구를 착하고 순한 친구들로 부탁드렸다. 말을 꺼내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고 특별 대우를 요구하는 부모처럼 느껴져 한없이 작아졌다. 하지만, 내가 공포의 세계로 들어가기 무섭다고, 우진이를 그 곳에 밀어 버리고 모르는 척 눈을 감았던 그때로, 죽어도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두 번 다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새 담임선생님은 내 말을 ‘특별 대우’라고 여기지 않으셨다. 아이를 도울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셨고 부탁드리지 않은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살펴 주셨다.
교직원 연수가 컴퓨터실에서 열렸다. 주제는 ‘소아 뇌전증과 대처 방법’이었다. 교직 15년 동안 전체 연수에서 이런 주제를 다룬 건 처음이었다. 대부분의 연수는 가볍고 형식적으로 흘러가곤 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체육 선생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우리 학교에도 소아 뇌전증을 앓는 아이가 있습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대처 방법을 꼭 알아 두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전신 경련을 일으키는 대발작만을 뇌전증이라 여기지만, 의식을 잃고 잠시 멍해지거나 얼굴 일부가 경련하는 것도 부분 발작이며, 이 또한 뇌전증의 한 형태라고 설명해 주셨다. 부분 발작이 대발작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아이들의 작은 변화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셨다. 시간을 채우기 위한 연수가 아니었다. 깊이 공부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설명이었다. 진심으로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한없이 고마웠다.
대처 방법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시작됐다. 스크린 속 아이가 갑자기 쓰러져 경련을 일으켰다. 마치 우진이가 쓰러져 몸을 떨고 있는 듯해,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감았다. 가슴이 미어졌고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그때 문득, 누군가가 나를 훔쳐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스쳤다. 담임선생님과 몇몇 선생님은 우진이의 병을 알고 있었다. 불쌍하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면 비참할 것 같았다. 눈물을 꾹 참으며 고개를 들었다. 몸을 꼿꼿이 세우려고 노력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 선생님들을 똑바로 보았다. 그런데 아무도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엄숙할 만큼 진지하게 화면을 바라보았다. 대처 방법을 제대로 숙지해서 소아 뇌전증을 앓는 아이를 잘 도와줘야겠다는 결의만이 컴퓨터실을 꽉 채우고 있었다. 나 혼자만이 우진이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 있는 많은 선생님들이 함께 지키고 있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조용히 흘러내렸다. 우진이의 병을 알리기까지 오랜 고민이 있었다. 감추고 싶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우진이가 더 위험해질지도 몰랐다. 선생님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런데 그 마음이 무색하게 모두가 나와 우진이의 고통을 무겁게 바라봐 주었고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 했다. 화낼까 봐, 거절당할까 봐, 이상하게 보일까 봐 차마 꺼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꾹꾹 눌러 두었던 부탁들이었다. 우진이의 안전을 위해 어렵게 끄집어 놓은 그 말들을 많은 사람들이 소중하게 다뤄줬다. 그들의 진심이 모여 우진이와 나를 안전하게 감싸주고 있었다.
교육심리학에는 ‘학습된 무기력’으로 불리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1975년, 셀리그먼은 스물네 마리의 개를 세 집단으로 나누어 상자에 넣고 전기 충격을 주었다. 첫 번째 집단의 개들은 코로 조작기를 누르면 전기 충격을 스스로 멈출 수 있었다. 두 번째 집단은 몸이 묶여 있어 어떤 대처도 불가능했고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세 번째 집단은 전기 충격을 받지 않았다. 24시간 뒤, 셀리그먼은 세 집단 모두에게 가운데 벽만 넘으면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있는 똑같은 환경을 주었다. 첫 번째와 세 번째 집단의 개들은 벽을 넘어 충격을 피했지만 두 번째 집단의 개들은 구석에 웅크린 채 전기 충격을 그대로 받고 있었다. 개들은 더 이상 벗어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어떤 노력을 해도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무기력이, 이미 몸 깊숙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두 번째 집단의 개처럼, 구석에 웅크린 채 전기 충격을 그대로 받아내며 버텨왔다. 어린 시절의 나도, 그때의 엄마도 이미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과거라는 상자 속에 갇혀 있었다. 두려움과 공포가 덮쳐올 때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안에 머물렀다. 그러다 우진이가 나 대신 고통 받는 모습을 보자, 견딜 수 없었다. 여전히 무서웠지만, 벽을 향해 몸을 던졌다. 만신창이가 될 것을 각오했다. 벽 가까이 다가서자, 많은 이들이 내 손을 붙들었다. 그들은 온 힘을 다해 나를 벽 위로 끌어 올렸다. 벽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질책도, 차가운 시선도 아니었다. 따뜻한 위로와 깊은 공감, 그리고 어떻게든 함께하겠다는 굳은 마음이었다. 그들 덕분에 나는 그 벽을 넘었다.
과거에 묶여 있던 나를 끝내 밖으로 이끈 건 우진이었다. 우진이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그 시간의 어둠 속에 숨어, 세상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안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구하는 일이면서, 그를 통해 나 또한 구원받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세상에는 언제든 기꺼이 손을 내밀 준비가 된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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