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육

아이들에게 새로운 우주가 열리는 순간

사이를 걷는 사람 2025. 6. 1. 22:13

 

6학년 담임이 된 첫날,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남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급식실이 없어서 교실로 급식대를 끌고 들어 와서 밥, , 반찬, 식판을 배식하기 편하게 다시 정리해야 했다. 아무리 6학년이라고 해도 첫날은 헤매기 마련인데 그 남자아이는 급식 바퀴를 고정하고 있는 받침대를 능숙하게 풀고 급식대를 부드럽게 교실로 이동시켰으며 무거운 밥통과 식판을 너무도 쉽게 들어 올려 딱 맞는 자리에 놓았다. 반찬통과 수저통도 일사불란하게 급식대 위에 정렬시켰다. 그 아이의 능수능란함에 놀랐지만 더 감탄했던 것은 내가 말하기도 전에 스스로 그 일을 했다는 것이다.

 

힘든 일에 솔선수범하는 그 모습에 반해 버렸다.

, 승현아. 어쩌면 이렇게 급식대 정리를 잘 하니? 힘도 세서 무거운 밥통과 식판도 척척 드네. 힘든 일인데 친구들을 위해 애써줘서 정말 고맙다.”

승현이는 내 칭찬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지만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친구들이 먹기 편하도록 급식대를 예술적으로 세팅했다. 승현이가 급식 시간에만 앞장선 것은 아니었다. 학급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슈퍼맨처럼 나타나 척척 해결했다.

 

한번은 한 아이가 속이 안 좋아 교실 바닥에 토한 적이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비위가 약했다. 밥 먹을 때 누가 똥이라는 말만 꺼내도 눈물을 흘리며 헛구역질을 해서 짖궂은 남자 아이들은 일부러 점심시간에 내 옆에서 똥이라고 말하고 도망치곤 했다. 쭈구리고 앉아 토사물을 치우면서 토한 아이한테 미안해 그러지 않으려고 했지만 속이 울렁거려 계속 구역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눈물이 저절로 주르륵 계속 흘렀다. 갑자기 누가 내가 들고 있던 쓰레받기와 걸레를 낚아챘다.

선생님, 이리 주세요.”

 

승현이었다. 승현이는 토사물을 쓰레받기에 모으고 걸레로 바닥을 쓱쓱 닦았다. 순식간에 바닥은 정리되었다. 승현이가 학생이 아니라 거대한 산처럼 보였다. 듬직하고 모든 것을 품어 안을 수 있는 넉넉함. 승현이는 6학년 1학기 회장이 되었고 누구보다 멋지게 회장으로서 역할을 잘 해냈다.

 

그렇게 1년의 세월이 흐르고 우리는 헤어졌다. 6학년을 졸업하고 이제는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 종종 교실로 찾아오곤 했다. 그날은 현지와 주연이가 놀러 온 날이었다.

선생님, 그거 아세요? 승현이 원래 5학년때까지 학교에서 아무것도 안 했다는 거?”

현지의 말에 어리둥절해졌다.

승현이가?”

놀라서 되묻자 이번에는 주연이가 대답했다.

승현이 6학년이 되기 전까지 공부도 못 하고 숙제도 하나도 안 했어요. 수업도 하나도 안 들었어요.”

정말? 승현이 6학년 때 숙제 안 한 것을 본 적이 없는데?”

현지와 주연이가 한목소리로 말했다.

그니깐요! 정말 신기했다니까요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승현이는 절대로 숙제를 안 해올 아이가 아닌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현지와 주연이가 거짓말을 할 아이들은 아니니까 진실 일텐데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변할 수 있지?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스승의 날, 승현이가 커다란 검은 가방을 메고 교실로 찾아왔다. 중학생이 된 승현이는 더 의젓해 보였다. 승현이는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선생님, 저 실은 5학년때까지 학교에서 아무것도 안 했어요. 나는 공부도 못 하고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6학년 올라와서는 좀 다르게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첫날 용기내서 급식 당번을 한 거였는데 선생님이 칭찬해 주셔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공부는 여전히 못 했지만 공부가 다가 아니고 나도 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중학교 때 하고 싶었던 오케스트라부에 지원할 수 있었어요. 선생님이 아니셨다면 저는 또 포기했을 거예요. 지금 저는 정말 행복해요. 트럼펫을 연주하는게 재밌고 즐거워요.”

승현이는 가방을 열고 트럼펫을 꺼냈다.

선생님, 선생님께 꼭 이 노래를 연주해 드리고 싶었어요.”

승현이는 트렘펫으로 스승의 노래를 정성껏 연주했다. 한음 한음에 그 진심이 느껴져 가슴이 먹먹했다.

 

그날을 다시 떠올리면 경건해진다. 한없이 믿음직해 태산처럼 든든하며 슈퍼맨 같던 그 아이가 한때는 무력감으로 학교에서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아이들 안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승현이는 내 덕분이라고 했지만 내가 한 것이라고는 승현이가 우리 반 아이들과 내게 베푼 친절하고 사려 깊은 도움에 감탄한 것 뿐이었다. 그리고 승현이가 한 행동은 진심으로 감동할 만한 것들이었다. 선생님이란 자리의 무게와 위엄을 느낀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와 행동이 아이들에게 새로운 우주를 열어 줄 수도 있고 닫히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 무겁게 다가온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저 감탄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다행이고 고맙다.

 

올해 만난 3학년 하준이와 태윤이가 떠오른다. 하준이는 똑똑하고 성실한 친구였는데 자신감이 없었다. 국어 시간에 질문에 답을 쓰는 활동이 나오면 자신의 답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망설이다가 텅 빈 채로 놔두기 일쑤였고 미술 시간에도 계속 선생님, 이렇게 해도 돼요?”라고 물어봤다. 하준이는 똑똑하니까 너를 믿고 그냥 하면 된다고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들과 교실에서 체육을 하기 위해 책상을 한쪽으로 몰았다. 교탁을 구석으로 치우기 위해 밀었는데 내가 팔 힘이 없다 보니 잘 밀리지 않았다. 낑낑대며 밀고 있는데 보다 못한 하준이가 내 곁에 와서 교탁을 밀었다. 갑자기 교탁이 쑤욱 밀리며 부드럽게 교실 구석으로 이동했다.

, 하준아. 너 대단하다. 힘이 엄청 세네.”

그 후로 교실 체육을 할 때마다 교탁은 하준이 차지였다. 아이들은 내가 힘겹게 교탁을 밀면 소리 높여 하준이! 하준이!”하고 구호처럼 외쳐댔고 하준이는 짐짓 무심한 표정으로 나타나 교탁을 밀었다. 하준이는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미술 시간에 더 이상 묻지 않았고 국어 시간에 답을 막힘없이 썼고 심지어 체육 시간에는 전략게임에서 작전을 짤 때는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친구들을 이끌어 갔다.

 

태윤이는 섬세하고 여려서 조그만 일에도 울음을 터트렸다. 한번은 점심 시간에 급식 줄을 서면서 앞에 있는 친구가 줄을 비뚤게 섰다고 발로 쳤다. 그 친구가 화가 나서 그러지 말라고 하자 더 세게 친구를 발로 때렸다. 내가 엄하게 친구를 때리면 안 되지.”라고 말했더니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숨을 헐떡이며 숨이안 쉬어져.”라고 해서 놀란 나는 태윤이의 등을 쓸어 내리며 달랬다. 내가 너무 무섭게 말했나 싶어 다음에 태윤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러지 말라고 상냥하게 말했다. 하지만 태윤이는 울음을 터트렸고 숨이 넘어가는 증상은 저번보다 더 심해졌다. 저러다 아이가 잘못될 것 같아 겁이 덜컥 났지만 태윤이를 믿기로 했다. 계속 태윤이의 울음을 달래다 보면 아이한테 나쁜 버릇이 생길 것 같아서 그러지 않기로 했다.

 

숨이쉬어꺼억.”

당장이라도 보건실로 아이를 안고 뛰쳐 가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누르고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태윤아, 숨 쉴 수 있어. 우리 태윤이는 숨 쉬고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어. 선생님은 믿어.”

그리고 차분히 태윤이가 스스로 안정을 되찾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태윤이는 점점 더 심해졌고 나는 내가 잘못 판단한 거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감과 태윤이한테 울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는 잘못된 습관을 만들어 줄 수는 없다는 단호한 의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겉으로는 침착을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내가 아이한테 바른 습관을 만든다고 애를 잡는 것은 아닌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 나도 태윤이를 따라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태윤이의 울음이 잦아들며 가빴던 숨소리가 느려졌다. , 정말 다행이었다. 태윤이가 어느 정도 평온을 되찾자 곁에 다가가 등을 두드려 주었다.

잘했어. 태윤이. 선생님은 태윤이가 스스로 진정할 줄 알고 있었어. 역시 태윤이야.”

태윤이는 그때 이후로 자신이 잘못할 때마다 여전히 울기는 했지만 점점 강도가 약해갔고 나중에는 설핏 눈물이 눈에 비치는 정도로 멈추게 되었다.

 

태윤이는 그 조그마한 몸으로 급식대 마무리를 도맡았다. 3학년 아이들이라 힘들 것 같아 내가 급식대 정리를 했는데 바빠서 늦게 하게 된 날이 있었다. 밥통과 반찬통이 이미 야무지게 정리되어 있어서 누가 이렇게 야물딱지게 했냐고 했더니 태윤이가 손을 들었다. 그 후로 태윤이는 스스로 급식대 정리를 1년동안이나 성실하게 해냈다. 태윤이는 급식대 마무리를 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여물어갔다. 태윤이 덕분에 선생님이 밥을 허겁지겁 먹지 않아도 돼서 고맙다고 말하면 태윤이는 곧은 자세로 사뭇 진지하게 경청했다. 태윤이의 그런 모습을 보면 나의 칭찬과 감사를 태윤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 태윤이에게 칭찬을 할 때면 태윤이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온 진심을 다해 이야기했다.

 

누가 내 이야기를 이 아이들만큼 진정으로 마음을 다해 들어 주겠는가. 나를 이렇게 깊게 존중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마음을 다해 존중해 주고 싶다. 그들이 내게 했던 것처럼. 아이들은 내 작은 알아채림과 인정을 온 마음으로 받아 들여 자신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고 놀라운 열매를 맺어 나간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아이들을 제대로 보기 위해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