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육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을 멈추다

사이를 걷는 사람 2025. 5. 11. 20:21

선생님은 모범적인 인격과 행동을 보여야 한다. 학생들이 선생님의 모든 행동을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사랑받고 존경받아야 한다.’, ‘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고 친절한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다.’ ,‘ 선생님은 모든 아이를 공정하게 대해야 한다.’

 

신규 시절, 선생님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사회적 잣대에 숨이 막혔다. 아이들이 마냥 좋고 최선을 다할 마음은 항상 차고 넘쳤지만, 현실에서는 선생님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막말과 행동을 할 때가 많았으니까. 그때마다 통렬한 후회와 반성을 했지만 얼마 안 돼 아이들한테 제 정신을 잃고 소리를 지르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교사의 모습이 될 자신이 없어 한없이 작아져 갔다. 그렇다고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설 배짱과 용기도 없었다. 다만 지금은 교사로서 형편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십 년 후에는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기대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사람들을 만날 때 선생님이란 직업을 밝히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내 직업을 알게 된 순간부터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온갖 선생님들을 소환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공감대를 넓히려고 하는 시도라는 것을 알지만 선생님이라는 필터가 덧붙인 채로 나를 바라본다는 느낌은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소개팅같이 정확한 정보를 알려야 하는 곳에서는 내 직업을 알려주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그냥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에게는 다니고 있는 학교 이름에 물산을 붙여 알려줬다. 00 물산. 물산이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딱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 같지 않았고 평범해 보였기 때문이다.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이 무거웠지만 동시에 아이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지킬 수 있는 선생님이라는 자리에 내가 섰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515, 처음 맞는 스승의 날이라 의미가 각별해 옷차림에 신경을 썼다. 레이스가 달린 하얀 원피스에, 잔잔한 노란 꽃이 가득한 머리띠, 가장자리에 주름이 잡혀 부드럽게 물결치는 노란색 카디건을 차려입고 갔더니 아이들은 깡충깡충 뛰며 선생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아요.”라며 좋아했다. 아이들의 환호에 한껏 기쁨에 부풀어 있는데 학년 부장님이 조용히 부르셨다.

이렇게 입으면 안 돼.”

의아해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왜요? 아이들도 좋아하고 선생님들도 예쁘다고 해 주셨는데요.”

학년 부장님은 답답하다는 듯 손사래를 치셨다.

욕한거야. 선생님이면 선생님답게 입어야지.”

그때서야 알았다. 선생님들이 예쁘다고 하시면서 입꼬리를 살며시 틀며 묘한 웃음을 지으신 의미를.

 

그때는 한참 이효리의 버스 손잡이만 한 커다란 링 귀걸이와 통 넓은 힙합 청바지가 유행했다. 별생각 없이 그렇게 입고 갔는데 뒤에서 선생님들이 나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수군거렸다.

나 초등학생인 줄 알았잖아.”

그러게. 선생님이 옷을 저렇게 입으면 되나?”

그게 싫었다. 왜 선생님은 단정한 옷을 입어야 하나? 노출이 심한 옷이 아니면 어떤 옷이든 입어도 되지 않나? 그런 말들이 가슴 깊은 곳에서 치솟아 올라 몸을 홱 돌려 시원하게 일갈하고 싶었지만 애써 못 들은 척했다. 삼켜진 말들은 상담 자리에서 학부모님이 아이가 선생님이 옷을 예쁘게 입으셔서 좋다고 했다는 말을 듣고서야 열정적으로 터져 나왔다.

어머님, 저는 선생님 옷도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학습 자료라 생각해요. 아이들이 선생님의 옷과 귀걸이를 보며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에 자극을 받고 예술 감각이 일깨워지는 거죠.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위해 옷과 액세서리에 신경을 씁니다.”

 

교감 선생님은 신규 선생님들에게만 유독 치마를 입으라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다리에 알이 두드러진 데다 웬만한 남자보다 다리가 두꺼워 치마를 입기 싫어했지만, 눈 밖에 벗어나고 싶지 않아서 고심 끝에 긴 치마를 입었다. 하지만 교감 선생님은 왜 무릎길이의 치마를 안 입었냐고 타박하셨다.

교감 선생님처럼 다리가 예쁘면 그냥 치마를 입을 텐데 저는 다리에 자신이 없어서요.”

내 입장을 이해해 주실 줄 알았는데 교감 선생님은 .”하고 코웃음을 치셨다. 어른이 어른한테 대놓고 비웃을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여기저기 부딪히는 사이, 어느새 선생님의 패션은 아이들에게 배움이 될 수 있다는 교육적 소신은 사라지고 내 옷은 점점 누구의 관심도 끌지 않도록 평범해졌다.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은 셔츠에 검정 정장 바지, 아니면 청바지에 평범한 티를 입는다. 지금은 이십여 년 그때처럼 선생님이 힙합 바지를 입었다고 손가락질하는 시대가 아니건만. 일상의 평온함을 선택한 나는 내 색깔을 잃어버렸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많고 모두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부모님들이 옆 반 교육 활동이 알차니까 우리 반에서도 하길 바라시면 옆 반 선생님을 열심히 곁눈질해 가며 따라 했다. 그런데 왜 옆 반에서는 잘 되던 학습 활동이 왜 내가 하면 엉망이 되는 건지. 재미있고 알차다는 수업 관련 연수를 듣고 와서 야심 차게 적용해 보지만 아이들의 시들시들한 반응에 제풀에 지쳐서 그만두기 일쑤였다. 열심히만 하면 십 년이 흐르면 그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 실력이 될 줄 알았는데 십 년하고도 십 년이 더 흘렀건만 여전히 좋은 선생님은 닿을 수 없는 아득히 먼 저곳에 있었다.

 

교직 경력 이십 년 차에 6학년을 맡았다. 아이들의 관심거리를 파악하고 한마디 말이라도 더 따뜻하게 건네며 아이들한테 다가가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체육 시간에 한 아이가 끊임없이 떠들어 대 조심스럽고 상냥하게 “ 00, 조용히 좀 해 줄래?”라고 말한 게 다였는데 학부모님한테 아이가 지적을 받았다고 펑펑 울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다른 아이는 자리 바꿀 때, 원하는 짝이 되지 않았다고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몇몇은 보란 듯이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고 수업 시간에 집중하자.”, “급식 당번은 급식 대를 정리하자라는 당연한 말들에도 표정을 구기며 독기 서린 눈빛을 보냈다.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 사랑과 헌신이 부족한 건가? 하지만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점점 멀어져갔고 나는 눈치를 살피며 절절매었다. 그런 나와는 달리 육 년 차 선생님 반은 아이들이 선생님을 믿고 따랐다. 선생님을 보는 눈빛에 사랑과 존경이 듬뿍 담겨 있었고 예의가 발랐다. 어떻게 하면 그 선생님처럼 될 수 있을까. 나보다 한참이나 경력이 짧은 선생님께 부끄럽지만, 상황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했다. 선생님은 시원시원하게 대답하셨다.

무례한 아이들한테는 관심 안 가져요. 제가 왜 그런 아이들한테 시간과 감정을 낭비해야 하죠? 제게 잘하는 아이들한테만 사랑과 관심을 줘요.”

순간 머리가 망치에 얻어맞은 듯 얼얼했다. 선생님은 모든 아이에게 공평하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 아닌가? 그런데 무슨 말이지? 이건 차별 대우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아이들은 불공평하다고 투덜대지 않고 선생님을 믿고 따르는 거지? 오히려 공정하게 대하는 나는 아이들한테 무시당하는데? 수많은 생각들이 뒤죽박죽 엉켰다.

 

이번에는 교직 경력 십오 년 차인 다른 반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아이돌 같은 존재였다. 여자아이들은 선생님이 멀리서 보이면 꺄악하고 비명을 지르며 한달음에 달려가 반가워했으며 남자아이들은 선생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는 것을 명예로 여겼다. 비결을 여쭤봤다.

저는 교실에 권력이 한 아이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요. 반 내에서 영향력이 적은 아이들에게 일부러 관심을 줘서 권력을 키워줘요. 그래서 반 아이들 모두가 동등한 권력을 가지도록 해요. 그렇게 되면 교실 내에서 최고 권력자는 제가 되는 거죠. 그러면 반 운영이 수월해져요.”

내게 이상적인 교실의 모습은 선생님은 사랑으로, 바른길로 이끌고 아이들은 선생님을 존경하는 것이었다. 내 교실이 그렇지 않은 것은 아이들을 덜 사랑해서, 혹은 놓치고 있는 사랑이 있어서인 줄 알았다. 그런데 권력이라니? 선생님과 제자는 순수한 마음인 사랑과 존경으로 엮여야 한다는 내 생각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 선생님의 교실은 힘이 지배하는 냉혹한 사회의 논리를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었지만, 그 반에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사랑과 존경이 넘치고 있었다. 진정한 선생님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과 헌신으로 이끄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경력 육 년 차, 십오 년 차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선언했다. 네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난 너 포기할 거고 관심도 안 가질 거야. 내가 알고 있는 참된 선생님은 그러면은 안 됐다. 내가 읽은 책에서 읽은 좋은 선생님은 아무리 무례하게 굴어도 희생하며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그 모습에 감명받은 아이들은 변화했단 말이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이상적인 선생님이라고 믿고 있던 모습은 실은 그렇지 않은 게 아닐까? 내 답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자 스쳐 지나갔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흥미롭게 읽었지만,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에서는 끼어들면 안 된다고 생각해 멀리했던 지식이 확 다가왔다. 권력을 어떻게 차지하는가, 다른 사람을 원하는 대로 조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와 같은 것들이. 조직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의 Ted 강연이 떠올랐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사람을 테이커(Takers), 도움을 주는 사람을 기버(Givers), 상대방이 주면 나도 주는 사람을 매처(Machers)라고 한다. 이 중에서 가장 사회적으로 실패한 사람은 누구 일 거냐는 그의 질문에 기버라고 예상했고 그 답은 맞았다.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느라 바빠서 자신의 일을 잘 돌보지 못한 탓이었다. 그렇다면 가장 성공을 거둔 사람은 누구였을까? 자기 실속만 빠릿빠릿하게 챙기는 테이커일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럼 받는 대로 돌려주는 합리적인 매처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답은 기버였다. 최악의 실패와 최고의 성공을 거둔 사람은 모두 기버였지만 그 둘은 달랐다. 최악의 실패를 거둔 기버는 누구에게나 자신의 호의를 베풀었고 최고의 성공을 거둔 기버는 처음에는 모든 사람에게 주지만 그 후에는 받는 사람을 파악하여 그 사람이 테이커면 도움을 멈추었다. 나와 후배 선생님들에게 벌어진 일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와는 달리 후배 선생님들은 최고의 성공을 거둔 기버로 행동하며 테이커가 아니라 기버와 매처가 중심이 되는 교실 문화를 만들었다. 주기만 하는 선생님은 최악의 실패자였다.

 

학생과 선생님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자, 우리의 관계는 점차 자연스러워졌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하는 아이에게 예전처럼 무조건 믿고 기다리며 상냥하게 대하려고 갖은 애를 쓰기 보다(때로는 참다못해 폭발하기도 했다.)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특별한 관심과 관대함으로 아이의 마음을 얻었고 내 품에 쏙 들어왔다는 신호(예를 들면 자신이 아끼는 과자를 선생님께 주고 싶어 먹고 싶은 것을 참고 들고 왔다)가 켜지면 아이의 잘못에 대해 차갑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일명 밀당의 기술을 전략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감추어 두었던 나 그 자체를 드러내었다. “ 선생님은 이런 친구들이 좋아.”, “ 이런 행동은 싫어.” 같은 말들로. 아이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려고 노력했고 싫어하는 것들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이들은 나에 대해 알게 되니 더 편안해했고 그들이 나를 배려하는 행동들이 고맙게 느껴져 나 또한 해야 할 의무가 아니라 마음속 깊이 우러난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끼게 되었다.

 

학교를 옮기고 정신없이 바쁜 3월을 보내고 간만에 여유가 생긴 4월의 어느 날, 옆 반 선생님이 티(tea) 타임을 갖자고 하시며 6학년 선생님 교실로 이끄셨다.

이런 곳도 있구나 하실 거예요. 정말 예쁜 곳이에요.”

교실이 예뻐봤자 교실 아닌가? 궁금증이 밀려왔다. 문을 열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크고 작은 조명들이 곳곳에서 은은한 주황빛을 내뿜으며 와인색 커튼과 파란색 벨벳 의자, 검은 가족 소파가 일으키는 강렬한 색의 대비를 깊고 풍성하게 만들었다. 고풍스러운 나무 탁자 아래에는 고급스러운 페르시안 카펫이 우아하게 깔려 있었다. 벽에는 갤러리처럼 온갖 그림과 여러 나라에서 선생님이 직접 찍은 풍경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멋들어진 재즈 음악 소리를 배경으로 1900년대 초반 유행했던 유럽풍의 다이얼 전화기와 미국에서 구입한 수표 찍는 타자기도 보였다. 학교가 아니라 공간 이동을 해서 유럽에 낭만적인 카페에 온 것 같았다. 학교라는 곳에서 이런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 이색적인 교실의 주인, 선생님은 테두리에 금박이 새겨진 찻잔에 커피를 정성스레 따르고 있었다. 게시판에는 학생들의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아름다웠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서 아이들에게 가르치시기도 하고 매년 그 아이만의 앨범을 만들어서 선물하시기도 한다고 하셨다. 커피를 못 마시는 나를 위해서는 홍차를 내려 주셨다.

이 차는 벨로크 차예요. 공장에서 만들 것이 아니라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직접 만든 거예요. 영국에서 글 쓰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숙소가 있었는데 버지니아 울프도 그곳에서 글을 썼다고 해요. 그 숙소 앞의 정원에서 나는 향기와 분위기를 담아 만든 차예요. ”

선생님의 파란색 양복 재킷 카라에 파란 실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재킷 주머니에는 행커치프가 멋스럽게 꽂혀 있었다. 마치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파티에 참석한 영국 귀족처럼 보였다.

 

제가 좋아하는 곳으로 교실을 만들고 싶었어요.”

책장에는 당연히 아이들 책이 있는 건 줄 알았고 한 번도 내 책을 놓을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교실 책장에는 선생님 개인 책들이 꽤 많았다.

선생님, 오므라이스 잼잼 만화책도 있네요?”

제가 그 만화책을 좋아하는데 아이들도 정말 좋아해요.”

교실은 아이들의 공간이고 그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무너져 내렸다. 교실이 선생님과 아이들의 공간이 되자 취향을 나누며 서로의 마음이 이어졌다. 선생님은 교실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거침없이 드러내셨고 아이들은 그것을 함께 즐기며 누렸다. 교실 뒤편에는 각종 간식이 아기자기하게 차려져 있어 아이들은 언제든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홍차와 커피로 선생님들을 대접하시는 것처럼 아이들도 정성을 다해 대접하고 계셨다. 조명이 아름답다고 하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저는 빛의 명암이 드러나는 곳을 좋아해요.”

빛의 어둡고 밝음이라니.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조명은 다 백열등이라고 생각했고 주황색 불빛은 명상할 때나 잠깐 쓰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조명들은 각기 다르게 빛을 내고 있었다. 마치 밤이 서서히 시작되는 순간처럼 어둠에 설핏 물든 주황빛, 대낮의 태양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주황빛, 석양처럼 따스하게 퍼지는 주황빛 등 다채로운 주황빛이 어우러져 있었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빛들의 향연을 보며 그 선생님과 나는 다른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교실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우며 그 세계 속으로 나를 초대했다.

 

우리 반 아이들과 꿈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의사가 되고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아이 틈에서 한 아이가 손을 들며 진심을 담아 소리쳤다.

저는 6학년 1반 학생이 되고 싶어요.”

6학년 1반은 그 선생님 반이었다. 우리 반 학생이 다른 반이 되고 싶다고 하는데도 질투가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도 그 반 학생이 되고 싶었으니까.

 

좋은 선생님이라면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들에 그래도 된다.’로 고쳐 다시 적어 보았다.

선생님은 모범적인 인격과 행동을 보이지 않아도 된다.’ ‘ 선생님은 학생들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을 다할 필요가 없다.’,‘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고 친절하지 않아도 된다.’, ‘선생님은 모든 아이를 공정하게 대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 그래도 되었다. 아니, 그래야 하는 거였다.

 

교사의 역할이 내가 가진 고유한 개성과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짓누르게 두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사회에서 원하는 선생님이 되려고 애썼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학부모가 신뢰하고 학교가 인정하는 선생님. 그래서 자꾸 나를 고치려 들었다. 좋은 선생님과는 한참 거리가 먼 내 모습을 들킬까 봐 감정을 숨기고 취향을 감췄다.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내가 울어야 한다면 그래도 된다고 그들이 행복하다면 나는 상처받아도 된다고. 나를 부정하는 것인 사랑이고 헌신이라 믿었다. 좋은 선생님이면 해야 할 것 같은 정답 같은 말들과 행동을 반복하며 벗어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나 자신이 희미해졌고 아이들은 내 진짜 마음을 몰랐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조차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가까워지지 못한 건 부족해서가 아니라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알겠다. 내가 나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아이들과 진짜로 만날 수 있다. 더는 숨지 않고 내 연약함, 슬픔, 두려움까지도 내주면서 그렇게 가까워지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교실을 채워 보았다. 학급 우편함을 어느 학교에나 있는 빨간 지붕을 가진 하얀 집 모양 대신 유럽풍의 노란색 철제 스타일로 고르고 토론할 때 쓰는 보드판을 평범한 흰색 대신 화사한 베이비핑크로 주문했다. 노란색 우편함은 초록색 게시판과 제법 멋들어지게 잘 어울리고 베이비 핑크 보드판은 하얀 우유 속에 분홍 딸기시럽처럼 하얀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교실에 분홍빛 생기를 불어넣어 마음에 쏙 들었다. 쉬는 시간마다 어떻게든 아이들과 가까워지고 싶어 억지로 생각을 쥐어 짜내며 말을 걸던 것을 멈췄다. 그냥 아이들이 떠드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넘쳐나는 생명력과 충만한 기쁨이 파도가 되어 내게 밀려 들어왔다. 잠시 파도의 흐름에 나를 맡기고 행복한 마음에 머물렀다. 놀다가 무언가 보여주고 싶거나 할 말이 생긴 아이들이 내게 쪼르르 달려온다. 반갑고 기뻐 환한 웃음으로 아이들을 맞이했다. 기다리는 것도 다가가는 것임을 배웠다.

 

글쓰기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글을 찾아 인터넷을 헤매다 문득 손을 멈췄다. 내가 쓴 글을 들려줘도 괜찮지 않을까. 작년에 실제로 겪은 일을 쓴 글이 하나 있었다. 제목은 이토록 아름다운 단어였다니’. 용기를 내어 읽어주자,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진짜예요? 진짜로 선생님이 겪은 일이에요?” 몇 번이고 물었다. 인터넷에서 본 흥미진진한 글과는 달리 담백한 이야기였지만 반응은 훨씬 더 뜨거웠다. 생각하고 느낀 부분을 읽으면 아이들은 숨을 죽였다. , 아이들도 나를 궁금해했구나. 내가 아이들 속마음을 알고 싶었던 것처럼, 아이들도 내 마음을 알고 싶었구나. 언제나 새침한 얼굴로 나와 거리를 두던 한 아이가, 내 글을 듣고는 책상을 손바닥으로 쳐대며 박장대소를 했다. 처음 보는 무장 해제된 웃는 얼굴. 그 아이와 가까워진 것 같아 마음이 뭉클해졌다. 이것이 나의 교실이다. 내 취향과 감정과 생각이 겹겹이 쌓여있는 작은 우주. 그 교실에 아이들을 초대하면 아이들은 저마다의 우주를 가지고 온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감정을 느끼고 질문을 품은 채. 우리는 서로의 우주를 들여다본다. 낯설고 다른 서로의 세계가 만나 흔들리고 조금씩 확장된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해줘야만 좋은 교사라 생각했다. 무언가를 가르치고 도와주고 이끌어야 한다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곁에 머무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을 멈추고 나는 나에게 물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이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누리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