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1학년 때, 하교 길에 엄마가 준 50월으로 깐도리(아이스크림)를 사서 먹곤 했다. 50원으로 살 수 있는 아이스크림은 깐도리 뿐이었지만 괜찮았다. 깐도리를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기뻤다. 뭉텅뭉텅 깐도리를 베어 먹고 싶었지만 그 달콤함을 빨리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혓바닥으로 조금씩 핥아 가며 그 시간을 어떻게든 길게 늘이고자 하였다.
한번은 깐도리를 사먹을 수 있는 너무나 소중한 50원을 잃어버릴까봐 어디에 둘까 고민하다가 국어책 속에 끼워 두었다. 웬지 책가방 속 큰 공간에 덜렁거리도록 넣어 두는 것보다 책 속에 끼워 두면 책이 안전하게 보호해 줄 것 같았다. 학교에서 국어책을 꺼내 펼쳐 보았는데 돈이 보이지 않았다. 모든 페이지를 펼치며 샅샅이 뒤졌지만 보이지 않아 속이 상해 ‘으앙’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담임 선생님은 수업을 하다 말고 왜 그러냐고 물어 보셨다.
“ 아무리... 흑흑. 찾아도... 50원이 보이지 않아요... 어흐흑. 깐도리... 사..먹어야 하는데..”
선생님은 다정하게 50원을 내 손에 쥐어주시며 등을 토닥이셨다.
“ 선생님이 찾았다. 여기 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는데 쉽게 찾아낸 선생님이 대단해 보이고 놀라웠다. 아무튼 선생님 덕분에 하교길에 깐도리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 날 저녁에 숙제를 하려고 국어책을 꺼냈는데 50원이 툭하고 떨어졌다. 선생님이 주신 돈은 내 돈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떡하지? 선생님께 이 50원을 어떻게 돌려 드리지? 당시에 나는 선생님들이 거대한 산처럼 보여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것이 고작이어서 말을 먼저 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따. 결국, 한 달간 낑낑거리다가 선생님께 돈을 돌려 드리는 것을 포기했다.
성인이 되었을 때 그 일을 떠올리면 참 따뜻했지만 어른이라면 50원 정도는 울고 있는 아이에게 줄 수 있다는 생각도 들면서 고마운 마음은 희석되어 갔다. 그런데 막상 선생님이 되어 보니 그럴 수 있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30명도 아니고 66명이나 되던 아이들에게 수업을 가르치는데 한 아이가 큰 소리로 울고 그 이유도 고작 아이스크림 사 먹을 작은 돈을 잃어버렸다? 선생님은 66개의 책상으로 가득찬 교실에서 아이들도 다니기 힘든 비좁은 책상 사이를 헤치며 아이에게 다가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대신 선생님은 교단에 서서 큰 소리로 “ 왜 우니?”라고 물어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이들이 울 때마다 아이들도 간신히 다니는 좁은 책상 사잇길을 지나 아이들 곁에서 눈을 마주치며 왜 우냐고 부드럽게 물으셨다. 그리고 그깟 일로 울어서 친구들 수업을 방해하냐고 한번도 꾸짖지 않고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 아직은 학교 규칙을 지키기 어려운 1학년 아이들의 심정을 보듬어 주셨다. 덕분에 선생님께 먼저 말을 거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던 나는 1학년 말에는 선생님께 모르는 문제를 스스럼없이 질문하는 아이로 바뀌었다.
학교 선생님이란 직업은 아이를 향해야 하지만 현장에서 늘 그렇게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교실에는 한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의 아이들이 있고 그 아이들은 예측 불가능한 갖가지 일들을 일으킨다. 게다나 나가야 할 진도에 대한 압박감, 급하게 처리해야 할 여러 학교 업무에 치이다 보면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마음과 상황을 헤아리는 마음의 여유를 잃기 십상이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아이들을 나도 모르게 다그치고 아이가 아니라 집단으로 보며 효율성이 최우선의 가치가 되어 버린다. 1학년 때 선생님은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항상 중심을 아이에게 두셨다. 그건 절대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중학교 1학년 스승의 날, 국어 선생님께서 초등학교 선생님한테 편지를 쓰라고 하셨다. 한참 사춘기가 물이 오른 때라, 왜 감사할 선생님도 없는데 편지를 강제로 써야 하나라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왜 너는 편지를 안 쓰니?” 라는 국어 선생님의 기습 질문에 화들짝 놀란 나는 감춰야 할 본심을 내뱉고 말았다.
“ 쓸 사람이 없어서요.”
국어 선생님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범생인 내 이미지를 이렇게 허무하게 박살낼 수는 없었다.
“ 아니, 그게 아니라 써야 할 선생님이 너무 많아서 고민하고 있었어요.”
선생님은 급조한 거짓말에 씁쓰레하게 웃으셨다.
아. 이런. 선생님께 싸가지 없다고 찍히겠군. 모범생 이미지를 되찾고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편지를 쓰기로 했다. 그런데 누구한테 써야 하나? 너무도 좋아하는 1학년 선생님과 존경하는 3학년 선생님은 전출을 가셔서 주소를 모르니 쓸 수가 없었다. 주소를 아는 선생님들 중에 누구한테 써야 하나? 기억도 안 나는 4학년 선생님, 부자였던 한 친구만 예뻐했던 5학년 선생님을 제외하니 6학년 때 선생님이 남았다. 음악을 좋아하는 평범한 선생님.
이 주일이 지난 후, 국어 선생님이 6학년때 선생님의 답장을 주셨다. 정자체로 정갈하고 곱게 두 페이지에 걸쳐 정성껏 써있었다. 편지를 받고 하늘을 날라 다닐 것 같이 기뻤던 선생님의 마음과 나의 앞길의 희망과 행복을 빌어주는 내용이 빼곡했다. 내가 보낸 편지는 형식적인 겉치레 뿐이었는데 선생님의 편지에는 나를 아끼는 사랑과 진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런 답장을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고맙기보다는 부담스럽고 죄책감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선생님이니까 답장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거지.’ 라는 생각을 하며 부담감과 죄책감을 떨쳐냈다.
그런데 선생님이 되고 보니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스승의 날 보내는 수십 통의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신규 때 몇 번 하다가 그만 두어 버렸다. 도저히 편지를 쓸 짬도 체력도 없다고 핑계를 대며 아이들 편지에 대한 답장은 후순위로 미루고 결국 아이들에게 “ 편지 고마웠다.”, “선생님 정말 기뻤어.” 따위의 간단한 말이나 짧은 쪽지로 퉁치기 일쑤였다. 지금은 예전과는 달리 스승의 날 받는 편지 갯수가 현저히 줄어들어 능히 답장을 쓸 만도 한데 아직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 선생님은 평범한 분이 아니셨다.
선생님께서 내가 만든 모자를 칭찬하셨던 기억도 났다. 색다르게 만들고 싶어서 챙을 물결 모양으로 변화를 주고 은박지로 깃털을 만들어 붙였다. 선생님은 내가 고심한 흔적을 다 알아차리셨다.
“ 와! 이 챙은 정말 획기적이다. 유명한 디자이너 같아. 선생님은 이런 모양의 챙을 본 적이 없어. 은박지로 깃털을 만든 것도 놀라운걸.”
모자뿐 아니라 선생님은 내가 만든 모든 미술 작품을 세심하게 살피시고 진심을 담아 감탄하셨다. 필통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강렬한 색깔 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선생님은 단박에 알아차리시며 이 색깔 조합은 아무나 쓰지 못한다며 현대판 고려청자 같다고 진심을 다해 말씀하셨다. 기분이 좋아서 하늘 위로 둥실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기쁜 감정보다 더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노력을 기울인 부분을 정확하게 알아 봐 주신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선생님이 된 후로, 끊임없이 아이들이 만든 작품에 관심을 기울이며 의도를 읽으려 애쓰고 잘한 부분을 찾아내어 한마디라도 좋은 말을 해주려고 했다. 왜 그러는지 몰랐는데 기억 속의 선생님이 일치하는 것을 보니까 이제야 알았다. 잊고 있었어도 무의식은 선생님께서 내게 주셨던 행복한 추억을 아이들에게 전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애쓰지만 때로는 학교 업무에 치여 작품을 그냥 걷어서 전시만 해 놓을 때도 있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아이가 표현하고 싶은 것과 잘한 부분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을 때는 어떤 반응을 해야할 지 난감해하며 “ 열심히 했네.”, “ 잘 했어.”라는 빈약한 칭찬을 하곤 한다.
6학년때 선생님처럼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봐주고 딱 맞는 적절한 칭찬을 하려면 얼마나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할까. 여전히 선생님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별다른 칭찬이 없어도 자신의 작품을 봐 주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는 것을 느끼며 작품에 시선을 두며 구석구석 살핀다. 선생님이면 저절로 되는 행동인 줄 알았는데 그 속에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자기 반성, 노력이 숨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다시 중학교 2학년때로 돌아가 선생님께 진심을 다해 고마웠다고 답장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어느 날, 아들의 친한 친구 준서와 그 어머님과 아들, 이렇게 넷이서 키즈 카페에 갔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고 있고 나는 준서엄마와 아이들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우유 급식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 이제 겨울이라 우유가 너무 차가워서 선생님께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따뜻한 우유를 먹을 수 있게 되었어요.”
“ 차가운 우유 먹으면 배가 아픈 아이들도 있는데 그러지 않으니까 참 좋네요.”
내가 맞장구를 치자 준서엄마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시며 강조하셨다.
“ 제가 말했어요.”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기쁨과 자부심으로 가득 찬 그녀는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 그런데 저라면 담임 선생님처럼 못 해요.”
예상 밖의 말이었는지 준서엄마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 아이들한테 좋은 거잖아요?” 라고 반문하셨다.
“ 지금 담임 선생님이 정말 대단하신거에요. 이십 여개가 넘는 우유를 데우려면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포트에 물을 여러 번 데우고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넣은 후에 이십여개가 넘는 우유를 넣었다가 뺏다 해야 해요. 수업도 하면서 쉬는 시간에 아이들 지켜보면서 우유까지 데워야 하는데 엄두가 안 나요. 그리고 혹시 뜨거운 물에 아이들이 화상을 입을 수도 있으니까 각별히 조심해야 하잖아요.”
그녀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셨다.
“ 어머? 그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어요. 어떡하죠? 선생님께 그만하시라고 말씀드려 볼까요?”
당장이라도 학교로 뛰쳐가실 것 같은 기세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 선생님이 하실만 하시니까 하실 거에요. 그리고 저번에 상담할 때, 선생님께서 힘들지만 아이들이 따뜻하게 우유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하셨어요.”
준서엄마는 정말 괜찮을까 하는 우려로 미간을 찌푸렸다. 선생님을 향한 걱정은 그녀가 한겨울에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던 따끈따끈한 우유만큼 참 따뜻했다.
그녀는 순수하고 배려심이 넘쳤지만 선생님이 아니었기에 선생님이 사소하고 당연한 일들을 위해 어떤 어려움과 수고를 겪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되고 나서야 내가 비로소서 알았던 것들을 그녀는 어떻게 간단한 설명만으로 곧바로 상황을 이해하고 선생님의 노고를 알아차렸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것일까? 아마도 학부모와 교사 모두 소중한 생명을 키우는 사람들이어서 그런게 아닐까? 학부모와 교사 간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지 않다는 희망을 보았다.
부모가 되면 우리는 사소하고 당연한 줄 알았던 것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연하게 먹었던 아침이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은 단잠의 유혹을 뿌리치며 지친 몸을 일으켜 준비했다는 것을. 부모님이라면 당연하게 청소와 빨래를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부모님도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안다. 알아 달라고 아이들을 위해 식사와 빨래, 청소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 우리의 사랑과 헌신을 알아채고 한 마디 말을 건네 주면 그동안의 힘듦이 사르르 녹는다는 것을.
부모와 선생님인 우리는 귀중한 생명을 마음을 다해 돌봐 봤기 때문에 조금만 생각하면 서로의 노력을 알아차릴 수 있다. 따뜻한 마음이 담뿍 담긴 위로로 같이 토닥여 주었으면 좋겠다. 감사해요. 모두 고생하셨어요. 우리 아이 곁을 당신과 함께 지킬 수 있어 든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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