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뒷동산에 하얀색 데이지가 흐드러지게 피어 초록 줄기를 하늘하늘 흔들던 2025년 5월 말, 이름 모를 야생화들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교정을 스치던 그때, 제주에서 한 중학교 교사가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유서에는 학부모와의 갈등이 적혀 있었다.
며칠 뒤, 졸업한 제자 오십 명이 그에게 쓴 편지가 공개되었다.
“선생님은 언제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학생들을 돌봐 주셨고 언제나 우리 곁에 계셨습니다. 저희가 잘못을 했을 때 혼을 내시기도 했지만 외면하기보다는 다가와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학생들을 생각하고 우선시하는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공부하고 성장하도록 항상 헌신하던 선생님이었습니다. 학생들을 위해 먹을거리도 사주시고 유쾌하게 학생들을 대하셔서 학생들이 학교를 즐겁고 활기차게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학생들이 학습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수업을 열심히 해주시고 학생들이 올바른 길을 걷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가슴이 저려왔다. 그는 진심으로 학생들과 소통하며, 늘 학생의 편에 서 있던 교사였다. 우리 사회가 그토록 바라던 ‘참된 스승’이었다.
그런데 왜 그토록 좋은 선생님이 죽음을 선택해야 했을까?
교직은 그가 사랑하고 헌신했던 삶이었다. 그런 그에게 학부모의 무차별한 비난은 존재 전체를 부정당하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가 무단 결석과 흡연을 반복하는 학생을 정성껏 지도하지 않았다면, 밤낮없이 울려대는 민원 전화를 성심성의껏 응대하지 않았다면, 교육청과 교장이 떠넘긴 민원을 거절했더라면, 어쩌면 그는 지금도 살아 있었을 지도 모른다.
신규 시절 겪었던 지옥 같은 5년을 기억한다. 나를 흘끗 바라보며 옆 반 선생님에게 “선생님 반이 되고 싶었는데 아쉬워요.”라고 말하던 우리 반 학부모한테 느꼈던 수치심을. 코 수술하면 소개팅을 해 주겠다고 말하던 학년 부장님한테 느꼈던 모멸감을, 훈화 중에 기계가 먹통이 되어 방송이 멈추자 나에게 “이 십팔년이 일을 어떻게 한거야? 이 개 쌍년아.”하고 쌍욕을 날리던 교장 선생님의 일그러진 얼굴을, 학년 일은 내가 다 했는데도 “네 동기는 싹싹한데 너는 왜 그러니?”하고 비교하던 동료 선생님의 타박을, 성추행을 하려고 해서 거부했더니 그럼 왜 회식자리에서 나랑 춤을 췄냐고 따지던 유부남 선생님의 질타를, 청첩장을 직접 주지 않고 학년 부장님을 통해 전달했다는 이유로 신규 선생님을 왕따시키던 선생님들의 부조리함을. 욕을 덜 먹기 위해, 질타를 덜 당하기 위해 그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말을 줄이고 행동을 조심스럽게 해 내 존재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그들은 웃는 것까지 지적했다. 너무 조용히 웃는다고, 음흉하다고.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조차 없는 동료 선생님들이 싫었고 이런 집단에 내가 속해 있다는 것이 참담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하는 것처럼 차츰 나를 부정했다. 왜 나는 무뚝뚝하지? 왜 음흉하게 웃지? 왜 일을 똑바로 못하지?
그 시절 나를 버티게 해준 것은 춤이었다. 퇴근 후에 자이브, 룸바, 탱고, 차차차, 살사, 째즈 댄스를 배웠다. 토요일은 클럽에서 밤새도록 살사를 추며 모든 것을 잊었다. 누군가와 손을 맞잡고 음악에 몸을 맡길 때, 나는 비로소 ‘사람’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지워졌던 내가 그곳에서는 사람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며 살아 있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는 댄스 동호회에서 개최하는 선상파티도 참여하고 회사 창립 기념식에 초대되어 살사 공연도 했다. 학교에서는 온통 잿빛 무성영화 같던 삶이 그곳에서는 찬란한 색채로 일렁이며 반짝였다.
오 년이 지나고 다른 학교로 발령받았는데 동료들이 전혀 달랐다. 작은 배려에 감탄했고 내가 하는 일을 알아주었다. 교과전담으로 미술을 가르쳤는데, 아이들 작품에 이름표를 붙이자 선생님들은 센스있다며 칭찬하셨다. 교실 환경을 꾸밀 수 있도록 아이들 작품을 설계했는데 선생님들은 덕분에 교실 환경에 대한 걱정을 덜었다며 기뻐하셨다. 맛있는 간식이 생기면 챙겨 주시고 학년 회식에서 좋은 곳으로 가게 되면 꼭 불러 주셨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 함께 분노하며 맞서주었으며 잘못하거나 실수를 하더라도 감싸주었다. 나는 변한 것이 없었는데 그들은 나를 다르게 바라보았고 덕분에 내 삶도 놀라울 정도로 바뀌었다. 무시당하고 보잘 것 없던 내가 이곳에서는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지옥 같던 그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고 벗어날 수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세상도 ‘있는 것뿐’이었다. 나는 다시 교사가 되었다.
아니, 다시 사람이 되었다.
학교가 바뀔 때마다 내 세상은 완전히 새로워졌다. 어떤 곳에서는 믿을 만한 동료이자 좋은 선생님으로, 또 어ᄄᅠᆫ 곳에서는 그저 평범하고 무난한 사람으로, 때로는 착하지만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암흑의 시간이 돌아왔다. 마치 선생님이 아니라 백화점에서 VVIP 고객을 상대하는 직원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학부모들은 우아한 어조로 주문했다.
“ 우리 아이가 왜 친구를 때렸는지 마음은 읽어 주셨나요?”
“ 작년 선생님은 정말 훌륭하셨어요. 그림책을 읽어주고 아이들 생각을 물어봐 주셨어요. 저희 아이가 발표도 잘하고 생각도 깊이가 있다며 반에서 제일 뛰어나다고 칭찬하셨죠. 선생님도 그런 활동하시면 아이들 사고력 키우는데 도움이 많이 될텐데……”
때로는 24시간 고객선테 상담 직원이 될 것 같기도 했다. 새벽 두 시, 세 시에 아이가 친구에게 놀림을 받았다는 장문의 카톡이 올라오기도 했고 토요일 날 학부모한테 전화가 오기도 했다. 알림장 내용 좀 알려 달라고. 그런 요구들을 들어주지 않으면 나는 아이들을 위해 그것조차 하지 않는 사람, 무책임하고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는 교사가 되어 버렸다.
새 학년이 되면 선생님들은 아이보다는 학부모 정보를 교환하기 바빴다.
“미술 시간에 작품을 서로 감상하는 활동 하시면 안 돼요. A어머님이 자기 아이 작품을 칭찬하는 친구들이 적어 아이가 상처받았다고 항의하시거든요.”
“수학 시험보고 꼭 오답 노트를 아이들이 쓰도록 해야 해요. 아니면 B어머님이 아이들한테 도움이 되는 활동인데 왜 안 하냐고 학교에 전화 걸어요.”
“수학 시간에 아이들 칠판에 나와서 문제 풀게 하면 안 돼요. C아버님이 자기 아이가 수치심을 느꼈다고 민원 넣어요.”
숨이 턱 막혔다. 선생님들은 몸을 움츠렸다. 해서는 안 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다른 반과는 다른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특색있는 교육 활동을 하고 싶어도 “ 왜 우리 반만 하느냐”고 민원을 받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반 선생님이 “왜 저 반은 하는데 우리 반은 안 하느냐”고 항의를 받을 수도 있었다. 일주일마다 아이들에게 칭찬하고 싶은 말을 넣어 상장으로 만들어 주던 것을 멈췄고 달마다 글쓰기 대회를 열던 것도 그만두었다. 남들과 똑같아야 했다. 아니면 내가 공격받거나 다른 선생님들이 나 때문에 곤란해지니까.
진심으로 아이들을 위해 달라며 세상 품위 있게 훈수를 두던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불리하거나 자신이 조금이라도 피해를 받는 상황에 놓이면 돌변했다. 그토록 강조하던 교양을 내던지고 거칠게 달려들며 악다구니를 썼다.
어느 날,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발로 거칠게 여러 번 찼다. 맞은 아이는 겁에 질려 소심하게 발로 살짝 두어번 정도 쳤다. 달려가서 두 아이를 떼어놓고 정황을 살폈다. 그 날 때린 아이 어머님께 전화를 드려 상황을 설명드렸다.
“선생님, 왜 다른 아이 편만 드나요?”
“네? 제가 무슨?”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를 발로 세게 쳤다고 하셨잖아요. 다른 아이는 그 후에 우리 아이를 살짝 발로 쳤다면서요. 왜 우리 아이한테만 세게 쳤다고 하세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제가 눈으로 봤어요. 어머님. 전 본 그대로 말했어요. 세게 친 것을 세게 쳤다고 말하지 그럼 뭐하고 말하나요?”
그러자 어머님은 부르짖었다.
“왜 따지세요?”
또 다른 날에는 아이가 학교에 가기를 거부해 정문 앞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있다고 연락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아이를 달래 왜 그런지 물었더니 학교 화장실에서 똥 싸게 될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배가 아프면 할아버지한테 연락해서 집에서 응가를 하도록 해 주겠다고 다독였다. 아이는 안심하며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고 부모님도 동의했다. 그런데 열흘 뒤, 학부모는 전화로 짜증을 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 할아버지가 힘들어하시잖아요! 그만 하시라구요.”
숱하게 겪은 일이라 내성이 생겼는지 상처 따위는 받지 않았다.
“ 네,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능숙하게 백화점 직원처럼 상냥하게 응대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들에게 나는 주문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존재였다. 서비스가 흡족하지 않으면 불평을 하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내 모습이 씁쓸했다.
그러다 5년이 흘러 다시 바뀐 학교. 학부모 총회가 열렸다. 학급 운영 방침을 설명하고 부모님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사장에게 신제품에 대해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평가를 기다리는 신입 사원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
한 어머님이 조용히 손을 드셨다. 긴장이 되어 심장이 쿵쿵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 같았다. 예전 학교에서 취조하듯 날아왔던 질문들이 떠올랐다.
“ 아이들이 명상을 좋아하지 않을텐데 그것은 어떻게 해결하실 건가요?”
“ 직업 놀이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는 어떻게 지도하실 건가요?”
어떤 질문들이 퍼부어지더라도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곤란해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응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어머님이 입을 여셨다.
“선생님만의 교육 철학이 감동이었어요.”
다른 어머님들도 고개를 끄덕이셨다.
“요즘 시대에는 명상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께서 해 주시니까 정말 좋네요.”
“직업 놀이 재미있겠어요. 아이들을 위해 애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낯선 반응에 얼떨떨했다. 학부모님들은 나를 선생님으로 대접하고 전폭적인 신뢰와 응원을 보내고 계셨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지만 가슴 속에 묻어 두어야만 했던 것들이 새싹이 되어 여기저기서 솟아났다. 거침없이 가지를 뻗어가고 꽃도 열매도 마음껏 맺을 수 있겠다는 설렘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3Km밖에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도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전하고 싶다. 고통의 시간을 간신히 버텨냈던 그날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 어딘가에서 같은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당신에게.
우리는 교사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누군가의 자녀이고, 배우자이며 친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다. 교사라는 이름이 나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마음을 보듬지 못한 채, 아이들과 학부모의 마음만 살피다 보면 끝내 무너진다. 교사로서 실패해도 괜찮다. 나는 그저 세상에 존재하는 것으로 부모님과 배우자, 자녀, 친구에게 의미 있는 존재임을 잊지 않기를. 그리고 설령 가족이 없다고 해도 살아있는 그 자체가 나 자신에게 의미를 가진다. 실패했어도 내 삶은 계속된다. 지금은 실패로 보일지라도 언젠가는 지혜가 될 수도,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오늘이 무너졌다고 해서 내일까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당신의 진심은 결코 무력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그 사랑과 눈물은 언젠가 반드시 누군가의 가슴에 스며들거라고도. 아직, 그 시간이 오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니, 당신은 꼭 살아야 한다. 아이들을 향해 품은 열정, 그리고 인간답지 않은 이들마저 진심으로 대하는 그 따뜻함은 이 세상에서 결코 사라져서는 안된다. 순수하기에 더 아프고, 더 외롭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 삭막한 세상에 당신 같은 사람이 존재하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희망을 본다. 당신은 아이들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진정한 스승이다.
그러니 부디, 우리 같이 살아요.
당신이 걸어온 그 길을, 아이들과 함께 다시 걸어주기를.
우리는, 그리고 당신이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이들은,
당신 같은 선생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그리고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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