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학교의 현장학습 위축에 대해서 책임을 안 지려고 학생들의 소중한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교사들에게 정확히 이렇게 일침을 날렸다.
"혹시 구더기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장독을 없애버리면 안 되죠."
나는 이재명 대통령을 좋아하고 그 열정과 유연한 일처리에 감탄한다. 하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무림고수가 되어 이재명 대통령에게 독침을 날려 버리는 상상을 해버리고 말았다.
2022년 강원도의 한 초등학교 현장체험학습 도중 한 학생이 숨진 사고와 관련하여 법원은 담임교사에게 유죄를 선고하였다. 유죄판결 이후 현장체험학습이 급격히 감소하였다. 교육청은 안전 요원을 늘리고 손해배상과 소송 지원을 하겠다고 나섰다. 교육청은 여전히 선생님의 일은 남의 일로 여겼다. 일반적으로 업무 상 일어날 수 있는 예측불가능한 사고에 대해서는 직원 대신 회사가 책임지는 것처럼 교육청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원이란다. 그 말은 오롯이 모든 무게는 교사 개인이 짊어지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선생님들이 받은 것은 지원이 아니라 정교해진 메뉴얼이었고 그만큼 늘어난 일거리였다. 안전요원 채용과 범죄경력 조회, 운전자의 운전 자격 요건, 차량 외부의 앞타이어 재생타이어 사용 여부, 타이머 마모 상태 확인, 운전자 음주 측정까지. 현장체험을 진행하던 선생님은 끝내 화를 참지 못하셨다.
"타이어 마모 상태까지 내가 왜 확인해야 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교육청은 안전조치 했을 때 면책권을 주겠다고 교사를 보호하겠다며 수많은 안전 지침을 들이 밀었다. 그 지침들은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좌절감이 들게 했고 '아이들과 함께 현장체험 학습 가기 위해서는 대충 체크했다고 표시하는 수밖에 없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면 나는 모든 것을 다 뒤집어 쓰겠구나라는 깊은 불안에 맞닦드리게 했다.
2018년의 그 일은 2026년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은 말했다.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이가 산 자를 구한다" 라고.
하지만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한 과거는 현재가 되어 나타난다.
유령이 아니라 산자의 얼굴이 되어.
2018년 5월 18일, 연합뉴스에 ‘ 초등생 고속도로 휴게소 방치 혐의 교사 벌금 800만 원’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다음은 기사 중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한 부분이다.
현장 체험학습을 가던 중 학생이 복통을 호소하자 A교사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비닐봉지에 용변을 보도록 했다. 이후 A교사는 학생 부모에게 연락했고, 학생을 가까운 휴게소에 내려주면 데리러 가겠다는 말을 듣고 학생을 휴게소에 혼자 내리게 했다. 해당 학생은 부모가 도착할 때까지 1시간가량 혼자 휴게소에 있었다. 학부모가 이를 문제 삼자 학교 측이 아동 학대 관련 기관에 신고했다.
기사에 따르면 결국 A교사는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벌금 8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당시만 해도 교사와 관련한 신문 기사가 세간에 화제가 되어 떠들썩해도 선생님들은 대체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일종의 자포자기 혹은 선 긋기. 그 한쪽에 해당하거나 이쪽저쪽을 갈팡질팡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다. ‘어차피 세상에서는 우리에 대해 나쁘게 보잖아. 하루이틀도 아닌데 신경 써 봤자 나만 힘들지.’, ‘신문 기사에 나온 선생님, 정말 너무 하네. 이런 선생님들 때문에 우리가 같이 욕먹는 거야.’ 그런 마음들을 입에 올려 봤자 세상은 변하지 않고 속만 쓰리다고 생각하기에 무표정한 얼굴로 모르는 척하는 것 같았다. 꾹꾹 누르던 그 마음들이 설핏 비치는 때가 있는데 스승의 날이었다. 스승의 날 기사는 보통 선생님으로서는 다다를 수 없는 숭고한 헌신과 열정으로 학생들의 존경을 받은 선생님의 일화나 선생님으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만행(촌지를 받거나 아이를 체벌해 다치게 한 것 등등)을 꼬집으며 우리 교육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성토로 도배되기 마련이었다. 스승의 날 만큼은 도저히 참기 힘든 듯 선생님들은 불편한 마음을 비치셨다.
“스승의 날을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욕하려고 만든 거 같은데……. ”
“맞아요. 제발 없앴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방학 때로 옮기던가.”
“아니면 스승의 날만큼이라도 교사의 위상이라도 세워 주면 좋겠어요. 스승의 날이 제일 심해요.”
“우리가 만들어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우리한테 뭐라고 하는 거예요?”
하지만 스승의 날이 지나가면 선생님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고 속마음은 다시 그들의 가슴 속 깊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A교사의 신문 기사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교직 사회가 술렁거렸다. 아무리 열심히 선을 그어대도 선을 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A교사가 될 수 있었고 A교사가 되는 순간 강제로 선생님을 그만두어야 했다. 나 또한 A교사처럼 되는 것이 무서워 나와 A교사의 다른 점을 찾으려고 했다. 다르다는 것이 증명되면 나에게는 A교사와 같은 일이 닥치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열심히 각종 매체와 커뮤니티 자료를 수집했다. 그런데 자세한 자료를 모으면 모을수록, 내 마음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 갔다.
A교사는 훌륭했다. 교직 경력 30년에 6학년 부장을 맡은 분이라는 그분을 설명하는 한 줄에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는지를 안다. 그 정도 경력이면 얼마든지 힘든 일을 피해 갈 수 있을 텐데 모두가 기피하는 6학년을, 그것도 부장을 맡으셨다. 나이를 핑계로 몸을 사리지 않고 오히려 제일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닮고 싶은 선배의 모습이었다. 해가 갈수록 떨어지는 체력에 나이가 핑계가 아니라 한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체감하며 나는 닮기 힘들겠다며 조금씩 포기해 가던 존경하는 선배였다. ‘내가 같은 상황에 부닥치면 A 교사처럼 대처할 수 있을까?’라고 물으면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현장 체험학습을 가던 중에 아이가 용변 실수를 했다. 반 아이들과 평생, 이 사실을 이야기하지 말자고 약속한다. 그래, 아이의 용변 뒤처리를 하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아이의 수치심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반 아이들과 약속하는 것은 나도 했을 것 같아. 하지만 내가 경력 이십 년의 교사가 아니었다면? 내가 신규였다면 과연 거기까지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 질문에는 확답할 수 없었다. 아마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쩔쩔매며 간신히 용변 뒷수습만 해냈으리라.
휴게소에서 아이를 놔두거나 버스에 같이 태우고 가는 두 가지 선택지에서 A교사는 아이와 아이 부모님과 상의한 결과 전자를 택했다. 긴급한 상황에서 A교사는 아이의 심정을 들었고 부모님의 의사를 물었다. 나라면 과연 그랬을까? 불미스러운 일이 닥쳐 아이가 힘들어할 때, 제일 고려해야 할 것은 아이, 그다음이 부모님의 의견임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상황의 긴급성과 복잡성에 압도되어 아이와 부모님과 의논하기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모두에게 바람직한 최선으로 멋대로 결정해 버리지는 않았을까? 나는 A교사의 현명한 상황 대처 능력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A교사는 아이와 부모의 의견을 최우선시했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부모가 올 때까지 한 시간 동안 아이가 홀로 휴게소에 방치된 점. 물론 A교사는 휴게소 직원에서 아이를 잘 살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고 아이와 수시로 통화하며 달랬지만 한참 민감한 사춘기에 엄청난 일을 겪은 6학년 여자아이가 처음 와 본 낯선 곳 휴게소에서 느꼈을 감정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렇다면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교감 선생님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교감 선생님은 두 건의 학교폭력 사건을 해결하느라 수학여행에 오지 못했다. 교감 선생님을 기다린다면 한 시간 동안 반 아이들 전체가 휴게소나 버스에서 기다려야 한다. 아이 입장에서는 그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것도 창피한데 반 친구들이 자신 때문에 현장 체험학습도 가지 못하고 한 시간이나 같이 기다려야 한다. 다른 반 아이들은 왜 한 반만 늦게 오는지 궁금해할 테고 그러면 소문은 삽시간에 퍼질 수도 있으며 학부모들은 체험학습이 한 시간이나 지연된 것에 대해 항의할 것이다. 그리고 반 친구 중에 혹시 몇몇이 ‘누구 때문에 우리가 체험학습 장소에 빨리 못 간다.’라는 식의 불평을 할 수도 있다. 아무리 선생님이 단도리해도 아이들은 살아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때로는 해서는 알 될 말과 행동을 할 때가 있고 교사는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막지 못할 때도 있다.
아니면 동승한 신규 선생님께 반 전체를 맡기고 담임선생님이 학생 곁에 남았다면?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학년 부장은 체험학습을 총괄하고 운영하기 때문에 다른 반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신규 선생님이 학년 부장의 일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다 혹시 현장 체험학습에서 사고가 나면 책임자가 없기 때문에 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신규 선생님이 아이 곁에 있었다면? 충분히 고려할 만했지만 A선생님은 아이 입장에서 신규 남자 선생님과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더 곤혹스러울 것 같아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나 같으면 아이의 심정보다는 낯선 곳에 아이를 혼자 두는 것이 불안해서 신규 남자 선생님에게 아이와 함께 남도록 부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의 정서적 안정보다 물리적 안전을 택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다. 수치스러운 감정을 더 증폭시킬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나 역시 아동 학대로 고소당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현장 체험학습에서 다른 선생님과 동승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이 또한 흔한 선택지는 아니었다.
결국, A선생님이 내린 모든 선택은 이 땅의 선생님이라면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니. 아이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한 노련한 선생님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들이었다. 이 중의 한 가지라도 빠지면 할 수 없는 선택들이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내린 최선의 선택들.
그런데 그 결과, A선생님은 벌금 800만 원을 선고받고 직위해제 당했다. CCTV에서 휴게소에서 황망히 아이가 방황하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그 부모를 떠올리며 마음이 미어졌기에 항의한 그 부모를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던져져 최선을 다한 개인에게 죄를 묻고 그의 자부심이자 생계 수단인 직업을 빼앗아 가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어떻게든 해결하고자 돌파구를 찾고자 했던 선생님에게 아이의 인권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비난을 퍼붓는 법에, 그리고 사회에게 과연 그대들은 아이의 인권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 무조건 지키라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기에 앞서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지킬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볼 생각은 없는지. 교육청은 이 사건 이후로 관내의 초등학교에 체험학습을 할 때는 여벌의 옷을 준비하라는 공문을 보냈는데 과연 여벌의 옷이 진정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 지금의 사회 시스템은 노련한 베테랑 교사도 아이의 건강한 행복과 인권을 지키는 게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
2018년으로부터 현 2026년까지 팔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현장 체험학습의 시계는 여전히 멈춰있다. 2025년 1월 22일 노컷뉴스(강원 CBS 진유정 기자)에 속초 현장학습에서 10대 학생이 주차장에서 움직이던 버스에 치여 사망한 사고와 관련하여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로 교사에게 금고 1년을 구형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은 뽀송한 솜털이 가득했을 한없이 앳되었을 한 생명이 속절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귀하게 여겼을 자식을 보내야만 하는 부모를 생각하면 마음이 또다시 무너져 내린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결코 다시는. 하지만 교사에게 업무 소홀의 책임을 지도록 하고 금고 1년을 구형하는 것으로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정말 교사가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만 하면 이 모든 일이 해결될까?
기사에 서 나온 현장학습은 테마파크에서 이루어졌다. 아이들과 같이 현장학습으로 놀이공원에 갈 때마다 나는 늘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볼 때마다 더한 긴장으로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있다 보면 집에 오면 초주검 상태로 쓰러지기 일쑤였다. 테마파크는 늘 사람들과 차들로 미어터진다. 아무리 안전에 촉각을 세워도 까딱하면 아이들은 위험한 상황에 놓이기 일쑤였다. 주차장에 빼곡한 차들은 언제 출발할지 알 수가 없었으며 아이들은 아무리 뛰지 말라고 해도 몇몇은 날쌔게 이쪽저쪽으로 움직이기 마련이었다. 혼돈의 카오스. 최선을 다하지만, 한두 명의 교사가 이삼십 명 학생들의 모든 상황을 통제하기는 역부족이다.
한번은 우리 반 아이들 줄 중간을 다른 학교 아이들이 가로질러 가는 바람에 우리 반이 둘로 나뉜 적이 있었다. 일 학년 아이들이라서 아이들을 잃어버릴까 봐 겁이 덜컥 났다. 줄을 멈춰 세우고 줄 중간으로 급히 뛰어간 나는 우리 반을 가로질러 가는 다른 학교 선생님들에게 벌컥 소리를 질렀다.
“우리 반 아이들이 끊겼잖아요! 너무 위험하잖아욧! 중간에 이러시면 어떻게 해요!”
그 선생님도 화를 내셨다.
“우리 반도 지금 가야 한다고요! 다른 반이랑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놓치면 안 되잖아욧!”
둘 다 격앙된 것에 비하면 다툼은 그게 다였다. 왜냐하면 둘 다 행여 아이들이 잘못될까 봐 노심초사하며 아이들을 챙기느라 싸울 정신 따위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선생님도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다른 반을 놓치면 반 전체가 미아가 되어 체험학습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아무리 초집중해도 이삼십 명 되는 아이들한테는 늘 돌발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화장실 갔다 오라고 하면 화장실 바로 오른쪽에 친구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가고 싶은 대로 왼쪽 공터로 걸어가는 아이들을 다급하게 불러 세워야 하는 일 따위는 애교였다. 현장 체험학습 버스에서 아이가 비닐봉지에 토하면 정말 고마웠다. 바닥이나 옷에 토하면 치우는 것도 일이거니와 다른 아이들이 그 냄새 때문에 동시에 여기저기서 ‘욱욱’거리면 머리가 하얘지며 울고 싶어진다. 그래도 그 상황은 아이들이 위험한 상황은 아니니까 차라리 괜찮다.
제일 힘든 순간은 내 몸이 둘이 아닌데 둘로 나뉘어 져야 하는 순간들이다. 현장 체험학습을 끝나고 버스가 출발하는데 한 아이가 말한다. “ 선생님, 저 가방을 놓고 왔어요.” 기사님께 부탁해서 버스를 다시 돌려 현장 체험학습 장소로 돌아온다. 아이를 따라서 가야 하는지, 버스 안에 남아 있어야 하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다. 아이를 따라서 가면 아이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지만 버스 안에 다른 친구들의 안전은 책임질 수 없다. 그렇다고 버스 안에 남아 있자니 아이 혼자서 가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하지? 결국 나는 버스 기사님께 부탁을 드리고 아이를 따라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주차장 같은 위험한 곳을 지나 아이가 혼자서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길까지 데려다주고 얼른 다녀오라고 하며 눈은 다른 아이들이 타고 있는 버스를 주시하며 둘 다 무사하길 기도한다. 내 딴에는 둘 다 지킬 수 있는 방법이지만 어떻게 보면 둘 다 방치하는 것일 수 있다. 한쪽에라도 문제가 생기면 어쩔 도리가 없다. 심장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지만 둘 다 안전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이게 내 최선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보일 수 있고 나 자신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안전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나조차도 현장 체험학습에 우리 반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은 것은 운이 좋아서라는 것을 안다. 인생에는 갖가지 돌발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고 사람의 능력으로는 막을 수 없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그 모든 것을 교사 한 명에게 막으라고 한다면 비극은 계속 되풀이될 것이다.
현장 체험학습 관련해서 학부모와 교사의 의견 충돌과 관련한 기사가 등장하고 있다. 교사들은 현재 현장 체험학습은 교사에게 과도한 부담과 책임을 떠넘긴다며 현장 체험학습을 거부한다. 학부모들은 교사가 현장 체험학습을 가지 않겠다는 것은 직무 유기이자 아동 학대라고 주장한다. 왜 우리는 누구보다 우리의 아이들을 사랑하는데 서로 싸워야 하는 것일까?
교사도 아이들을 위해 맛있는 장 담그고 싶다. 하지만 내 인생을 걸면서까지 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학부모든, 교사든, 대통령이든, 교육청이든, 우리가 바라는 것은 결국 똑같다.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현장 체험학습을 갔다 오는 것이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다치지 않으며 제발 죽지 않고. 현장 체험학습의 모든 위험한 상황을 다 예측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안전한 체험학습 장소를 같이 고를 수 있을 것이고 닥칠 수 있는 다양한 사고를 면밀히 다루고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같이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우리가 함께 안전망을 엮어간다면 안전망은 더 촘촘하고 튼튼해져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지켜나갈 것이다. 법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교사들을 지켜주었으면 한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함께 책임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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