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육

사소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

사이를 걷는 사람 2026. 5. 17. 11:38

초등학교 1학년 때, 하교 길에 엄마가 쥐여 준 50원으로 깐도리를 사 먹곤 했다. 50원으로 살 수 있는 아이스크림은 깐도리 뿐이었지만 괜찮았다. 깐도리를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기뻤다. 뭉텅뭉텅 베어 먹고 싶었지만 그 달콤함을 빨리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혓바닥으로 조금씩 핥아 가며 그 시간을 어떻게든 길게 늘였다.

 

한번은 깐도리를 사 먹을 수 있는 너무나 소중한 50원을 잃어버릴까 걱정돼, 어디에 둘까 고민하다가 국어책 속에 끼워 두었다. 웬지 책가방 속 큰 공간에 덜렁거리도록 넣어 두는 것보다 책 속에 끼워 두면 책이 안전하게 보호해 줄 것 같았다. 그런데 학교에서 국어책을 펼쳐 보니 동전이 보이지 않았다. 모든 페이지를 펼치며 샅샅이 뒤졌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속이 상해 으앙하고 울음이 터졌다. 선생님은 수업을 하다말고 왜 그러냐고 물어 보셨다.

아무리... 흑흑. 찾아도... 50원이 보이지 않아요... 어흐흑. 깐도리... ..먹어야 하는데..”

선생님은 다정하게 50원을 내 손에 쥐어 주시며 등을 토닥이셨다.

선생님이 찾았다. 여기 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동전을 선생님이 너무나 쉽게 찾아내 놀랍기도 하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무튼 그 덕분에 하교 길에 깐도리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숙제를 하려고 국어책을 꺼냈는데 책 사이에서 50원이 하고 떨어졌다. 그제야 알았다. 선생님이 주신 돈은 내 돈이 아니었다는 걸. 어떡하지. 50원을 어떻게 돌려 드리지. 당시에 나는 선생님들이 거대한 산처럼 느껴져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것이 고작이어서 먼저 말을 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한 달간 낑낑거리다가 끝내 돌려 드리지 못한 채 포기하고 말았다. 성인이 되어 그 일을 떠올리면 참 따뜻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른이라면 울고 있는 아이에게 그 정도의 돈은 건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그때 느꼈던 고마운 마음은 조금씩 옅어져 갔다.

 

그런데 막상 선생님이 되어 보니, 그럴 수 있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30명도 아니고 66명이나 되던 아이들에게 수업을 가르치는데 한 아이가 큰 소리로 울고 그 이유도 고작 아이스크림 사 먹을 작은 돈을 잃어버렸다? 선생님은 아이들도 다니기 힘든 비좁은 책상 사이를 비집고 아이에게 걸어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대신 교단에 서서 큰 소리로 왜 우니?”라고 물어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이들이 울 때마다 매번 책상 사이를 헤치고 다가가 눈을 맞추며 왜 우냐고 부드럽게 물으셨다. 그깟 일로 울어 친구들 수업을 방해한다며 나무라지도 않으셨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가 아직 낮선 아이들의 마음을 먼저 살펴 주셨다. 그 덕분이었을까. 선생님께 말을 거는 일이 너무나 어려웠던 나는 1학년이 끝날 무렵에는 선생님께 모르는 문제를 스스럼없이 질문하는 아이로 바뀌었다.

 

학교 선생님이란 직업은 아이를 바라보아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막상 현장에 서 보면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금방 알게 된다. 교실에는 늘 여러 아이들이 뒤섞여 있고, 그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예측하기 힘든 일들을 만들어낸다. 진도는 밀리고 행정은 끝이 없고 해야 할 일들은 왜인지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러다 보면 아이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살펴볼 여유는 어느새 가장 먼저 사라진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잠깐만 정신을 놓으면 아이들이 각자가 아니라 묶음처럼 보이며 효율이 판단의 앞자리를 차지해 버린다. 1학년 때 선생님은 그 소란스러운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언제나 마음의 첫 자리를 아이에게 두셨다. 그건 절대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중학교 1학년 스승의 날, 국어 선생님께서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께 편지를 쓰라고 하셨다. 한참 사춘기가 물이 오른 때라, 왜 감사할 선생님도 없는데 편지를 강제로 써야 하나라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왜 너는 편지를 안 쓰니?”

국어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화들짝 놀란 나는 감춰야 할 본심을 내뱉고 말았다.

쓸 사람이 없어서요.”

국어 선생님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범생인 내 이미지를 이렇게 허무하게 박살낼 수는 없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써야 할 선생님이 너무 많아서 고민하고 있었어요.”

급조한 거짓말에 선생님은 씁쓰레하게 웃으셨다. . 이런. 선생님께 싸가지 없다고 찍히겠군. 모범생 이미지를 되찾고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누구에게 써야 할까. 정말 좋아하는 1학년 선생님과 존경하던 3학년 선생님은 이미 전출 가신 터라 주소를 몰라 쓸 수가 없었다. 남은 건 주소를 알고 있는 선생님들뿐. 기억도 잘 나지 않는 4학년 선생님, 부자였던 한 친구만 유난히 예뻐했던 5학년 선생님을 빼고 나니 6학년 때 선생님이 남았다. 음악을 좋아하시던, 평범한 선생님.

 

이주쯤 지나 국어 선생님께서 6학년때 선생님이 보내온 답장을 건네주셨다. 정자체로 정갈하고 곱게, 두 페이지에 걸쳐 정성스레 적힌 편지였다. 편지를 받고 하늘을 날라 다닐 것 같이 기뻤던 선생님의 마음과 내 앞길의 희망과 행복을 빌어주는 말들이 빼곡했다. 내가 보낸 편지는 형식적인 겉치레 뿐이었는데 선생님의 편지에는 나를 아끼는 사랑과 진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런 답장을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고맙기보다는 부담스럽고 죄책감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선생님이니까 답장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거지.’ 라는 생각을 하며 부담감과 죄책감을 떨쳐냈다.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

 

그런데 선생님이 되고 보니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스승의 날 보내는 수십 통의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신규일 때 몇 번 해 보다가 그만 두어 버렸다. 도저히 편지를 쓸 짬도 체력도 없다고 핑계를 대며 아이들 편지에 대한 답장을 뒷전으로 미루다가 결국 아이들에게 편지 고마웠다.”, “선생님 정말 기뻤어.” 따위의 간단한 말이나 짧은 쪽지로 퉁치기 일쑤였다. 지금은 예전과는 달리 스승의 날 받는 편지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 답장을 쓸 만도 한데 여전히 그러지 못하고 있다. 선생님은 평범한 분이 아니셨다.

 

선생님께서 내가 만든 모자를 칭찬하셨던 기억도 떠올랐다. 색다르게 만들고 싶어서 챙을 물결 모양으로 바꾸고 은박지로 깃털을 만들어 붙였다. 선생님은 내가 어디에 마음을 쏟았는지 단번에 알아보셨다.

! 이 챙은 정말 획기적이다. 유명한 디자이너 같아. 선생님은 이런 모양의 챙을 본 적이 없어. 은박지로 깃털을 만든 것도 놀라운걸.”

모자뿐 아니라 선생님은 내가 만든 모든 미술 작품을 세심히 살펴보고 진심을 담아 감탄하셨다. 필통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강렬한 색 대비를 만들고 싶어 꽤 공을 들였다. 선생님은 단박에 알아차리시며 이 색깔 조합은 아무나 쓰지 못한다며 현대판 고려청자 같다고 진심을 다해 말씀하셨다. 기분이 좋아서 하늘로 둥실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기쁜 감정보다 더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노력을 기울인 부분을 정확하게 알아봐 주신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선생님이 된 뒤로는 아이들이 만든 작품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며 의도를 읽으려 애쓰고 잘한 부분을 찾아내어 한마디라도 따뜻한 말을 건네려 노력해 왔다. 왜 그러는지 모르고 그렇게 해 왔는데, 기억 속의 선생님과 나의 모습이 겹쳐지는 걸 보면서 이제야 알았다. 잊고 있었어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선생님께서 내게 주셨던 행복한 순간을 아이들에게도 전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애쓰지만 때로는 업무에 치여 작품을 대충 걷어 전시만 해 둘 때도 있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아이가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 어떤 부분을 칭찬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을 때는 열심히 했네.”, “잘 했어.”같은 빈약한 말로 넘어갈 때도 있다. 6학년때 선생님처럼 아이들의 마음을 정확히 알아보고 딱 맞는 칭찬을 하려면 얼마나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할까.

 

여전히 선생님을 따라가기에는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별다른 칭찬이 없어도 자신의 작품을 누군가가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기뻐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작품 앞에 잠시 멈춰 서서 구석구석 천천히 살피려 애쓴다. 선생님이면 저절로 되는 행동인 줄 알았는데 그 속에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스스로를 돌아보려는 마음, 그리고 보이지 않는 노력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다시 중학교 2학년 시절로 돌아가 그때의 선생님께 진심을 다해 고마웠다고 답장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어느 날, 우진이의 친한 친구 준서와 준서 엄마와 함께 키즈 카페에 간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고 있고 나는 준서 엄마와 차를 마시며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유 급식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이제 겨울이라 우유가 너무 차가워서 선생님께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따뜻한 우유를 먹을 수 있게 되었어요.”

차가운 우유 먹으면 배가 아픈 아이들도 있는데 그렇게 바뀌니 참 좋네요.”

내가 맞장구를 치자 준서 엄마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시며 강조하셨다.

제가 말했어요.”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기쁨과 자부심으로 가득 찬 준서 엄마는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저라면 담임선생님처럼 못 해요.”

예상 밖의 말이었는지 준서 엄마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되물었다.

아이들한테 좋은 거잖아요?”

지금 담임 선생님이 정말 대단하신거에요. 스무 개가 넘는 우유를 데우려면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포트에 물을 여러 번 데우고 뜨거운 물을 주전자에 옮겨 담은 다음 그 안에 우유를 넣었다가 뺏다 해야 해요. 수업도 하면서 쉬는 시간에는 아이들 지켜봐야 하는데 그 와중에 우유까지 데우는 건…… 정말 엄두가 안 나요. 그리고 혹시 뜨거운 물에 아이들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 각별히 조심해야 하잖아요.”

준서 엄마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셨다.

어머! 그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어요. 어떡하죠? 선생님께 그만하시라고 말씀드려 볼까요?”

 

당장이라도 학교로 뛰쳐가실 것 같은 기세에 나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선생님이 하실만 하시니까 하실 거에요. 그리고 지난번 상담때, 선생님께서 힘들긴 해도 아이들이 따뜻하게 우유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하셨어요.”

준서 엄마는 정말 괜찮을까 하는 우려로 미간을 찌푸렸다. 선생님을 향한 걱정은 준서 엄마가 한겨울에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던 따끈따끈한 우유만큼 참 따뜻했다.

 

준서 엄마는 순수하고 배려심이 넘쳤지만 선생님이 아니었기에 선생님이 사소하고 당연한 일들을 위해 어떤 어려움과 수고를 겪는지 알지 못 했다. 그런데도 선생님이 되고 나서야 내가 비로소 알았던 것들을 준서 엄마는 짧은 설명만으로 곧바로 이해하고 선생님의 노고를 알아차렸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어쩌면 학부모도 교사도 소중한 생명을 돌보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서로 그리 멀지 않은 존재라서일지도 모르겠다. 부모가 되고 나면 예전엔 사소하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들이 사실은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침 식탁에 늘 올라오던 밥이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은 단잠의 유혹을 털어내며 지친 몸을 일으켜 준비한 것이었음을. 당연하게 하는 일이라 믿었던 청소와 빨래도 사실은 누구에게나 힘이 드는 일상이었음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알아달라고 아이를 위해 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 그 마음과 수고를 알아채고 한 마디 말을 건네 주면 그동안 쌓였던 고달픔이 사르르 녹는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안다. 부모와 선생님인 우리는 귀한 생명을 마음을 다해 돌봐 봤기 때문에 조금만 마음을 기울이면 서로의 노력을 금세 알아볼 수 있다. 그 따뜻한 마음이 담뿍 담긴 위로로 서로를 살며시 토닥여 주면 좋겠다. 감사해요. 모두 고생하셨어요. 우리 아이 곁을 당신과 함께 지킬 수 있어 든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