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 수영 학원에서 준서가 동윤이를 놀려서 동윤이가 속상해해요. 준서가 그러지 못하도록 부탁드려요.”
동윤 어머님의 말씀에 ‘수영 강사님한테 이야기하시지 제가 왜?’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삼킨다. 특공무술 학원에서 옆 반 아이가 무술 못 한다고 웃었다고 기분 나빠서 사과받고 싶다고 하는 도경이한테 ‘왜 나한테?’라고 터져 나오려는 말을 꾹꾹 누른다.
‘그래, 다 우리 반 아이잖아. 학원보다는 학교에서 생활 지도하는 게 더 좋겠지.’
마음을 다잡으며 아이들을 불러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마음을 풀어주고, 학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안심시켜 드리지만, ‘왜 그곳에 있지도 않았던 내가?’라는 억울함이 스멀스멀 자꾸만 기어 나온다.
법에서는 학생이 피해자라면 장소가 학교 밖이어도 학교폭력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맞다. 우리 아이들을 폭력에서 지키는 좋은 일이라고 자신을 다독이지만 왜 학원에서, 놀이터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학교 선생님 책임인지 궁금해진다. 세상을 향해 한 번쯤은 묻고 싶어진다.
학교밖에는 아무도 없나요?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였다. 2학기가 무르익을 무렵, 시율이 어머님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님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말을 쏟아내셨다.
“놀이터에서 호진이가 시율이를 밀쳐서 시율이가 다칠 뻔했어요. 선생님께서 호진이 어머님께 전화해 주셨으면 해요.”
나는 먼저 상황을 정확히 알고 싶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문자로 자세히 보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이들을 차례로 불러 이야기를 들었다. 호진이는 놀이터에서 시율이를 보자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다고 했다. 시율이가 운동 기구를 엉뚱한 자세로 타고 있어서 직접 시범을 보여주려다 마음이 앞서 그만 시율이를 밀치게 된 거였다. 호진이는 자기가 밀친 줄도 몰랐다며 진심으로 미안해했고 시율이는 멋쩍게 웃으며 사과를 받아들였다.
시율이 어머님께 상황을 설명드리며 문자로 정리해 주신 내용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어떻게 그렇게 구체적으로 잘 정리하셨냐고 여쭤보았다.
“제가 거기에 있었으니까요.”
나도 모르게 “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호진이 어머님도 계셨나요?”
시율이 어머님은 그렇다고 하셨다.
“그러면 호진이 어머님께 직접 말씀드리시지 왜?”
놀이터에 두 분 다 계셨으면서 왜 굳이 나한테 연락해서 해결해 달라고 하시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호진이 엄마가 나 싫어하면 어떡해요?”
말문이 막혔다. 자녀가 괴롭힘을 당했다는데 지금 그게 중요하냐고 책망하고 싶었지만, 어머님의 떨리는 목소리에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라 그럴 수가 없었다.
우진이가 다섯 살 때, 육아 휴직을 했다. 유치원이 끝나면 놀이터에서 우진이를 놀게 하는 게 일상이었다. 우진이는 12월에 태어나서 또래보다 몸집도 작고 어리바리해서 친구들에게 치이기 일쑤였고, 특히 골목대장 격인 태민이는 유난히 우진이를 싫어해 괴롭혔다. 집에서 다양한 상황이 주어지는 역할극을 시키며, “하지 마!”라고 소리치는 것을 연습시켰지만 우진이는 집에서 큰소리로 잘하던 말을 정작 태민이 앞에서는 하지 못하고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다. 우진이가 당하는 것을 보면서 고통스러웠다. 끝도 없는 터널을 계속 걸어가는 것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아동 발달 심리 센터에 가서 역할극을 수도 없이 연습시켰는데 친구한테 하지 말라는 말도 하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상담 선생님은 물끄러미 나를 보시기만 하다가 한마디 말을 툭 던지셨다.
“아이가 당할 때, 엄마는 뭐 하셨는데요?”
순간, 머리가 띵했다.
“아, 저는······. 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있자, 선생님께서는 말을 마저 하셨다.
“어머님께서 아이를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러면 그 모습을 보고 아이는 스스로 지키는 방법을 배웁니다.”
이제 겨우 40개월 남짓 산 우진이에게 스스로 보호하지 못한다고 다그치기만 하고 지켜주지 못한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폭력이 일상이 되어 버린 놀이터 속에서 우진이는 지켜주는 사람이 없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그저 무시하면 무시하는 대로, 따돌리면 따돌리는 대로 짓밟히는 것이 타고난 운명인 것처럼 살고 있었다. 나는 우진이 곁, 그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언제든 “그만하라”고 외칠 수도, 폭력을 멈추게 할 수 있었건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들을 폭력 속에 홀로 남겨두었다. 뒤늦은 후회가 가슴을 후벼 팠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미끄럼틀로 몰려갔다. 내 눈은 우진이를 쫓고 있었다. 우진이도 미끄럼틀 계단을 올라갔는데 태민이가 우진이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손으로 막았다.
“넌 안 돼! 내려가!”
우진이는 말없이 계단을 내려와 미끄럼틀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친구들이 노는 것을 구경했다. 가슴이 미어졌다. 내가 지켜줘야 할 시간이었다. 처음 해 보는 일이라서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나도 이러면서 40개월인 우진이에게 왜 하지 말라는 말도 못 하냐고 다그쳤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 태민이 어머님께 태민이가 우진이만 미끄럼틀에 올라오지 못하게 하니까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해도 되느냐고 허락을 구했다. 태민이 어머님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고맙다고 말하고 미끄럼틀로 갔다.
“미끄럼틀은 다 같이 노는 곳이야. 친구한테 너는 못 논다고 말하면 안 돼.”
아이니까 잘 몰라서 그런 거니까 잘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최대한 상냥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런데 태민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저는 그런 적 없는데요.”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순간적으로 머리끝까지 화가 나, 눈에 힘이 들어가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가 봤거든!”
갑자기 변한 내 표정에 태민이는 겁을 먹었다. 아이한테 무슨 짓인가 싶어서 서둘러 눈에 힘을 풀고 화를 가라앉혔다. 우진이의 손을 잡고 미끄럼틀 계단을 같이 올라갔고 우진이는 친구들과 사이좋게 놀았다. 그 후로도 태민이는 우진이를 괴롭히긴 했지만, 나의 개입으로 금방 끝났고 횟수도 점점 줄어갔다. 그리고 우진이는 점차 스스로 지키는 방법을 배웠고 나중에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 나는 행여 맞지 않을까, 놀림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우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진이가 여덟 살 때, 미국에서 일 년 정도 살았다. 누군가 우진이를 공격할까 봐 잔뜩 긴장해 있던 한국과는 달리, 미국의 놀이터에서는 마음이 편안했다. 벤치에 앉아 좋아하는 책을 읽고 때로는 한가로이 당장이라도 파란색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하늘과 뽀송뽀송한 하얀 구름에 넋을 잃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친구를 때리거나, 놀이 규칙을 어기고 자기 멋대로 하면 부모님들이 빛의 속도로 뛰어와서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고 올바른 행동을 가르쳤다. 미국 땅이 워낙 넓어서 모든 도시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있던 컬럼비아 시티에서는 그랬다. 당하고 있는 아이의 부모님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우진이를 나 혼자가 아니라 놀이터에 있는 모든 부모님이 함께 지켜주고 있었다. 안전하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구나. 우진이도 나도 보호받고 있다는 안락함이 따스하게 나를 감싸고 이제야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놀이터뿐이 아니었다. 세인트루이스의 과학 박물관에서도 부모님들은 좋은 본보기를 보이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과학 부스에서 자기 아이가 이용하고 있는데 다른 아이가 오면 친구랑 같이 해야 한다고 일깨웠다. 장난감이 있으면 함께 놀도록 했고 기계를 작동하는 체험이면 차례를 지켜 돌아가며 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친구의 장난감을 뺏거나, 장난감을 더 많이 가지거나,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재빨리 달려와 그러지 못하게 했다. 이 모든 가르침은 간결한 말과 행동으로 즉시 이루어졌다.
딱 한 번 큰 소리로, 감정적으로 혼내는 것을 봤다. 박물관에서 열한 살 정도 되어 보이는 형이 다섯 살 동생을 업고 뛰어다녔다. 동생은 좋아서 깔깔깔 웃고 있었고 웃음소리에 흥이 난 형은 더 빠르게 속도를 내었다. 기쁨으로 반짝이는 미소에서 형제간의 사랑이 느껴져 아름다웠다. 하지만 헐레벌떡 형을 쫓아온 아빠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다니 어떻게 내 아들이 그럴 수 있냐고 하셨다. 그는 상처 입은 표정이었고, 아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평상시에 아빠가 아들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알 수 있었다. 아들에 대한 자긍심, 우리 아들은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지 않고 배려할 줄 아는 훌륭한 아들이라는 믿음이 느껴졌다. 멋있었다. 컬럼비아와 세인트루이스에서는 부모님들이 학교 밖에서 빛나는 긍지를 가지고 굳건히 아이들 옆을 지키고 있었다.
똑똑똑!
세상의 문을 두드리며 질문을 던져본다.
학교밖에는 아무도 없나요?
학교 밖에서 우리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학교 안에 있는 선생님밖에 없나요?
수영 학원에서, 특공무술 도장에서, 놀이터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 혼자뿐인가 싶어 외롭고 버거워지던 그때, 호진이 어머님께서 진심을 담아 응답하셨다.
“선생님, 호진이가 잘못했네요. 제가 호진이를 가르치고 시율이 어머님께 전화드려 사과하겠습니다.”
그리고 잊고 있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르며 “ 저도 있어요.”라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분노를 다스리기 어려워하던 윤아의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애써 주시던 윤아 어머님, 뛰다가 친구를 다치게 한 현준이의 손을 꼭 잡고 친구의 집을 직접 찾아가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를 전하셨던 현준이 아버님, 공포 영화 속 악마 들린 인형을 닮았다고 놀림 받던 우진이를 따뜻하게 감싸 주셨던 학원 선생님과 셔틀 기사님, 그 모든 어른들의 모습이 기억 저편에서 어른거렸다. 깊은 안도감이 들었다. 세상은 여전히 따뜻하다고, 우리 아이들은 혼자가 아니라고, 누군가는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학교 안에서도 학교 밖에서도 우리 아이들 곁을 지켜주는 어른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어른들이 아이들이 힘들다고 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손을 내밀어 주고, 잘못했을 때는 본보기가 되는 행동으로 가르쳐 준다면, 아이들은 ‘보호받는 것이 당연한 세상’을 배우며 ‘다른 사람을 지켜주는 것이 마땅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수영 학원에서, 특공무술 도장에서, 놀이터에서, 학교 안과 밖의 모든 곳에서 “저도 있어요.”라는 그 따뜻한 대답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를 바란다.
'초등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선생님의 비밀 일기장 (0) | 2026.05.28 |
|---|---|
| 교실에서 고객을 상대한다는 것 (0) | 2026.05.21 |
| 사소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 (0) | 2026.05.17 |
| 현장체험학습 2018년과 2026년 (1) | 2026.05.12 |
| 어둠 속에 홀로 있을 당신에게 (2) | 2025.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