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육

교실에서 고객을 상대한다는 것

사이를 걷는 사람 2026. 5. 21. 17:08

아이의 하루를 함께 고민합니다

 

예전 학교에서 나는 선생님이 아니라 백화점에서 VVIP 고객을 상대하는 직원이 된 것 같았다.

학부모들은 우아한 어조로 주문했다.

우리 아이가 왜 친구를 때렸는지 마음은 읽어 주셨나요?”

작년 선생님은 정말 훌륭하셨어요. 그림책을 읽어주고 아이들 생각을 물어봐 주셨어요. 저희 아이가 발표도 잘하고 생각도 깊이가 있다며 반에서 제일 뛰어나다고 칭찬하셨죠. 선생님도 그런 활동하시면 아이들 사고력 키우는데 도움이 많이 될텐데……

 

때로는 24시간 고객선터 상담 직원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새벽 두세 시에 아이가 친구에게 놀림을 받았다는 긴 카톡이 올라오기도 했고 토요일 날 학부모가 전화를 걸어 알림장 내용을 알려 달라 하기도 했다. 그런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나는 아이들을 위해 그것조차 하지 않는 사람, 무책임하고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는 교사가 되어 버렸다.

 

새 학년이 되면 선생님들은 아이보다는 학부모 정보를 교환하기 바빴다.

미술 시간에 작품을 서로 감상하는 활동 하시면 안 돼요. A 어머님이 자기 아이 작품을 칭찬하는 친구들이 적다며 아이가 상처받았다고 항의하시거든요.”

수학 시험 보고 꼭 오답 노트를 쓰게 하셔야 해요. 아니면 B 어머님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왜 안 하냐고 학교로 전화하세요.”

수학 시간에 아이들 칠판 앞으로 불러 문제 풀게 하면 안 돼요. C아버님이 자기 아이가 수치심을 느꼈다고 민원을 넣으세요.”

 

숨이 턱 막혔다. 선생님들은 몸을 움츠렸다. 해서는 안 될 것들이 너무 많았다. 특색있는 교육 활동을 하고 싶어도 왜 우리 반만 하느냐고 민원이 들어올 수 있었고 반대로 다른 반 선생님이 왜 저 반은 하는데 우리 반은 안 하느냐고 항의를 받을 수도 있었다. 나는 매주 아이들에게 칭찬하고 싶은 말을 넣어 상장으로 만들어 주던 것을 멈췄고 달마다 열던 글쓰기 대회도 그만두었다. 남들과 똑같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공격받거나 다른 선생님들이 나 때문에 곤란해지니까.

 

진심으로 아이들을 위해 달라며 세상 품위 있게 훈수를 두던 학부모들은 막상 자기 아이가 불리하거나 자신이 조금이라도 피해를 받는 상황에 놓이면 돌변했다. 그토록 강조하던 교양을 내던지고 거칠게 달려들며 악다구니를 썼다.

 

어느 날,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발로 거칠게 여러 번 찼다. 맞은 아이는 놀란 눈으로 어깨를 움츠리더니, 발끝으로 두어 번 툭 건드리며 불편한 마음을 겨우 드러냈다. 급히 다가가 두 아이를 떼어놓았다. 그날 오후, 먼저 때린 아이 어머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드렸다. 짧은 정적 끝에, 수화기 너머로 차가운 목소리가 또렷하게 흘러나왔다.

선생님, 왜 다른 아이 편만 드나요?”

? 제가 무슨?”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를 발로 세게 쳤다고 하셨잖아요. 그 아이도 우리 아이를 발로 쳤다면서요. 그런데 왜 우리 아이한테만 세게 쳤다고 하세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제가 눈으로 봤어요. 어머님. 전 본 그대로 말씀드린 거예요. 세게 친 것을 세게 쳤다고 말하지 그럼 뭐하고 말하나요?”

그러자 어머님은 부르짖었다.

왜 따지세요!”

 

또 다른 날, 아이가 학교에 오기를 거부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정문 앞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달래 왜 그런지 물었더니 학교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게 될까 봐 걱정된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배가 아프면 언제든 할아버지께 연락해 집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다독였다. 아이는 안심하며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고 부모님도 그러자고 했다. 그러고 열흘쯤 지났을까.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인사도 없이, 짜증 섞인 큰 목소리가 그대로 쏟아졌다.

할아버지가 힘들어하시잖아요! 그만 하시라구요!”

숱하게 겪은 일이라 내성이 생겼는지 상처 따위는 받지 않았다.

,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능숙하게, 백화점 직원처럼 웃음을 띠며 상냥하게 응대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들에게 나는 주문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서비스가 흡족하지 않으면 불평하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내 모습이 씁쓸했다.

 

그렇게 다섯 해가 흐르고 새로운 학교에서 첫 학부모 총회를 맞았다. 학급 운영 방침을 설명한 뒤 부모님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사장 앞에서 신제품을 발표해 놓고 평가를 기다리는 신입 사원이 이런 마음일까 싶었다. 한 어머님이 조용히 손을 드셨다. 순간 심장이 쿵쿵 뛰며 금세라도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예전 학교에서 취조하듯 날아왔던 질문들이 문득 스쳐 갔다.

아이들이 명상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직업 놀이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는 어떻게 지도하실 건가요?”

어떤 질문들이 퍼부어지더라도 전처럼 식은 땀을 흘리며 곤란해하지 말자고 조용히 호흡을 가라앉히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 어머님이 조용히 입을 여셨다.

선생님만의 교육 철학이 감동이었어요.”

다른 부모님들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시대에는 명상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께서 해 주신다니 정말 좋네요.”

직업 놀이 재미있겠어요. 아이들을 위해 애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낯선 반응에 얼떨떨했다. 부모님들은 나를 교사로 존중하며 전폭적인 신뢰와 응원을 보내고 계셨다. 그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가슴 속에 묻어 두어야만 했던 여러 교육 활동들이 새싹처럼 돋아나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가지를 뻗어가고 꽃도 열매도 마음껏 맺을 수 있으리라는 설렘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불과 몇 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이렇게도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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